박근혜정부는 외교 및 대북정책에서 원칙을 강조해 왔다. 상황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대외정책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원칙주의는 유용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국제사회에서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유연성을 겸비해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정부가 임기 절반을 보내면서 대일 외교와 대북정책에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유연성 부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한 것은 유연성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두 사람이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고 해서 곧바로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 개선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회생불능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도 박 대통령의 유연한 대응으로 개선의 실마리를 찾아야겠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의 외교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다. 이는 오직 우리만 갖고 있는 수단임에도 박 대통령은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그동안 내놓은 대북정책 가운데 북한 당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요소가 없는지 세밀히 살펴보고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부각시키며 통일준비위원회를 가동하는 것은 북을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데 마이너스 요인임에 틀림없다. 거기다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이 흡수통일론을 거론한 사실이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입장정리를 함으로써 우리의 진정성을 북에 알려야 한다.
북은 지금 우리의 조건 없는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그들이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는 명분과 실리를 추가로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정치군사적 과제와 사회경제적 과제를 철저히 분리해 대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북이 강하게 반발하는 한·미 군사훈련의 경우 시기와 규모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고 본다. 차제에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대북 특사 파견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북이 공개적인 특사 파견에 부담을 느낀다면 밀사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미, 한·중 관계는 비교적 순탄하지만 안정 궤도에 올라 있다고 보긴 어렵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중국의 신형 대국관계가 맞부딪히는 형국에서 우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에 중국이 반발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것이 뻔하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유연한 외교 전략은 필수다.
[사설] 유연성 전략, 한·일에 이어 남북관계로 확장을
입력 2015-06-24 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