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는 구급 출동명령이었다. 그런데 소방서 전체가 술렁였다. 지난 18일 오후 6시32분 서울 광진소방서로 메르스 확진환자를 옮겨 달라는 신고가 들어왔다. 모두가 ‘설마, 내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황영진(35) 소방교의 이름이 불렸다.
아내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복잡한 마음으로 출동 준비를 시작했다. 개인 보호복을 입고 라텍스 장갑을 끼고 의료용 N95마스크와 고글을 쓰는 데 8분이 걸렸다. 메르스 환자 이송 업무는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출동은 아니다. 대신 혹시 모를 감염 가능성을 막는 게 최우선이다.
이송할 환자는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투석을 받던 78세 남성 A씨였다. 국가지정격리병상이 있는 국립의료원으로 옮기는 임무였다. 운전을 맡은 김영수(27) 소방사와 한 조를 이뤘다. 환자를 옮기고 난 뒤 갈아입을 여벌의 보호복도 챙겼다.
오후 7시쯤 강동경희대병원에 도착했다. 황 소방교와 김 소방사는 들것을 밀고 8층 병실로 올라갔다. A씨는 거동이 불편해 다른 환자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걸렸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보호복을 입었지만 팔을 움직이면 손목 부분이 노출됐다. 김 소방사가 환자를 옮기면서 들것의 안전 난간에 개인 보호복 소매가 걸려 팔뚝이 노출되기도 했다. 김 소방사는 환자에 몰두한 나머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A씨를 태우고 국립의료원으로 출발했다. 강동경희대병원 의사 한 명이 동승했다. 보호복에 고글과 마스크까지 쓴 일행의 온몸에선 땀이 흘렀지만 에어컨을 켤 수 없었다. 에어컨이 공기를 순환시키면 바이러스가 퍼질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국립의료원에 A씨를 입원시킨 뒤 병실 앞에서 보호복과 마스크, 고글을 벗어 폐기물통에 넣고 손을 소독했다. 구급차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새 보호복과 마스크, 고글로 갈아입었다. 이송 과정에서 묻은 바이러스를 다른 데로 퍼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소방서로 돌아오니 오후 10시였다. 3시간30분이 걸린 첫 메르스 확진자 출동이었다. 진 빠지는 출동을 마치고 보고서를 작성하다 황 소방교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다른 사람이 메르스 출동을 했다가 감염되느니 차라리 나 한 명 감염되는 게 낫지….” 이날 그는 앞으로 메르스 환자 출동을 전담하겠다고 소방서에 요청했다. 그리고 지난 20일부터 광진소방서 메르스전담팀을 맡게 됐다.
황 소방교는 “메르스 의심환자나 격리환자를 이송해 주택가로 들어갈 때는 되도록 차량에서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 모를 주민들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서다. 현장에 도착하면 환자에게 구급차로 오라고 하거나 멀찍이 환자를 내려주고 스스로 가게 한다고 한다.
지난 22일 황 소방교를 인터뷰하는 도중에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투석 치료를 받았던 메르스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 격리된 B씨(59)를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로 이송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급히 보호복으로 갈아입고 구급차에 올라탔다. 동료들은 “조심해 다녀와”라며 근심어린 얼굴로 황 소방교를 떠나보냈다.
김미나 최예슬 기자 mina@kmib.co.kr
[메르스와 싸우는 사람들] ⑥ 광진소방서 메르스 전담팀
입력 2015-06-24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