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으로 단조로운 삶을 살던 나는 사무관급 3급공무원이 되고자 사표를 쓰고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실패해 낙담에 빠져 있었다. 삶의 갈림길에서 한 성도가 내게 “목사님이 되실 분”이란 말에 힘을 얻고 기도하는 가운데 협성신학교에 입학,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충청도 계룡산 밑 깊은 골짜기에서 시골목회를 하던 나는 25년 전, 막 발전하던 이곳 시흥으로 목회지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 목회도 쉽지 않았다. 아예 신학공부를 더 하고 감신대 출신 목사님들과도 교류해야 한다는 생각에 감신대 대학원에 원서를 냈다. 그런데 당시 서류에 건강진단서가 첨부돼야 해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고 이 때 내가 당뇨환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부터 약을 먹으며 꾸준히 치료를 한다고는 했지만 목회의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이어지면서 당뇨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관상동맥경화증이란 합병증까지 오고 몸이 비쩍 말라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옆의 환자가 당뇨로 무릎까지 절단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환자는 다리를 자를 수 없다며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모친에게 술과 빵을 사오라고 하는 등 소란을 피웠는데 결국은 목숨을 잃었다.
의사는 내게 “당뇨는 완치가 없으며 식이요법과 약으로 잘 조절해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고칠 수 없고 옆 환자처럼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절망스러웠다.
몸이 대꼬챙이처럼 마른 상태에서 내가 받는 치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병 온 한 권사님이 최수봉 박사에게 가서 ‘인슐린 펌프’를 착용해볼 것을 권했다.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가서 상담하고 펌프를 착용하게 되었다.
이 때가 18년 전이었다. 착용효과는 놀랄 만한 결과로 나타났다. 빠른 시간에 당뇨로 인한 증세가 몸에서 떠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음식조절을 할 필요없이 마음껏 식사를 하니 금방 해골 같았던 얼굴에 살이 붙었다. 운동도 하고 바쁘게 움직여도 예전처럼 축 처지지 않았고 목회와 설교에도 활력이 넘치니 성도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이렇게 귀한 것이 있는데 왜 진작 몰랐나 화가 날 정도였다.
최수봉 박사님은 “인슐림펌프의 기능은 당뇨환자에 맞게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인슐린을 자동으로 공급해 줌으로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췌장기능까지 회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이 때부터 나와 함께 하는 인슐린펌프는 고통스럽던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3일에 한번 인슐린만 보충해 주면 되기에 사용도 간편한 편이다. 나는 이 때부터 당뇨환자들을 만나면 사명감을 가지고 이 제품 사용을 권한다. 68세인 내가 지금도 열심히 목회할 수 있도록 귀한 기기를 발명하고 발전시켜 오신 최 박사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음식 조절서 해방… 살 붙고 활력 생겨” 이재덕 시흥 시온성민교회 목사 인슐린펌프 사용기
입력 2015-06-25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