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년 지구의 속살, 미국 서부 그랜드 서클 자유여행

입력 2015-06-25 02:47
미국 서부 유타주 브라이스 캐니언의 기기묘묘한 돌기둥들이 석양에 붉게 물들며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이 곳은 해의 각도에 따라 돌기둥의 색깔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선라이즈 포인트’ ‘선셋 포인트’를 찾으면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앤틸로프 캐니언.
위 사진부터 그랜드 캐니언, 자이언 국립공원.
호스슈 벤드.
미국 서부의 애리조나, 콜로라도, 뉴멕시코, 유타주의 대표 국립공원을 아우르는 2250여㎞의 지역은 ‘그랜드서클(Grand Circle)’이라고 불린다. 서로 연결하면 커다란 원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물과 공기가 수억 년의 세월 동안 한 시각도 쉬지 않고 집어낸 장엄한 천연 조각물들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이 빚은 기기묘묘한 풍광을 품고 있는 자이언·브라이스·그랜드·앤틸로프 캐니언은 침식과 풍화로 형성돼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여행객을 사로잡는다.

남성적인 웅장함을 지닌 자이언 국립공원

‘자이언 캐니언’으로 알려진 곳의 정식 명칭은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이다. 하지만 동남쪽으로 흐르는 버진강의 거센 강물이 나바호 사암을 긁어내어 만들어 낸 길이 24㎞, 깊이 800m가 넘는 거대한 협곡 지역이 이곳을 대표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이언 캐니언으로 불린다. 라스베이거스에서 262㎞ 떨어져 있다. 유타주에서도 가장 이른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다른 협곡에 비해 극적인 멋은 덜하지만 V자 형태로 깎인 암산의 풍모는 위압적이다.

자이언 국립공원을 찾았으면 가벼운 하이킹이라도 하는 게 좋다. 에메랄드 풀스 트레일은 숲과 절벽을 만날 수 있는 자이언의 걸작중 하나다. 2.4㎞ 정도로 2시간가량 소요돼 자이언 국립공원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트레일이다. 거대한 암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고개를 힘껏 젖혀야만 끝을 볼 수 있는 깎아지른 절벽을 만나게 된다. 간혹 트레일의 끝 지점에서 거대한 암벽을 로프에 의지해 내려오는 암벽등반가들도 볼 수 있다.



여성적인 섬세함이 돋보이는 브라이스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에서 동쪽으로 135㎞를 달리면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 국립공원에 닿는다. 애버니즈 브라이스가 발견해 그의 이름이 붙었다. 퇴적·융기·풍화 등 교과서에서 봤던 지질학 용어가 3D 입체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모래 중에서 단단한 부분만 남아 탑 모양으로 형성된 ‘후두(Hoodoo)’는 독특하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진면목을 감상하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해의 각도에 따라 돌기둥의 색깔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침이나 오후에는 붉은빛에 가깝고 한낮에는 주황·분홍·크림색으로 보인다. 전망대에 ‘선라이즈 포인트’ ‘선셋 포인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브라이스 캐니언에도 난이도 별로 다양한 트레일이 있다. 트레일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도 브라이스 캐니언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수억 년 ‘지질학의 보고’ 그랜드 캐니언

‘글랜 캐니언댐’에서 시작해 ‘후버댐’까지 이어지는 446㎞의 길고 거대한 협곡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와 맞먹는다. 협곡의 깊이는 평균 1600m이다. 폭은 가장 좁은 곳이 180m, 넓은 곳은 30㎞에 달한다.

191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지금까지 미국 서부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국립공원이다. 콜로라도강을 기준으로 노스림과 사우스림으로 나뉜다. 사우스림에는 일년 내내 방문할 수 있는 데다 교통편, 숙박, 관람 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고 일출 풍광이 빼어난 전망대 ‘마더 포인트’가 있다. 여기서 서쪽으로 약 10분을 걸으면 일몰 풍광이 근사한 ‘야바파이 포인트’가 나온다.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의 진면목을 보려면 협곡으로 내려서야 한다.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Bright Angel Trail)’은 대협곡의 중앙을 흐르는 콜로라도강 지척까지 내려갈 수 있는 코스다. 왕복 약 20㎞에 달하는 거리로 10∼12시간 정도 소요된다. 출발점이 해발 2103m이고 콜로라도 강은 732m로 고도차는 1371m에 달한다. 일반적인 등산 코스와는 반대로 먼저 내려갔다가 거꾸로 올라오는 코스이기에 더욱 힘이 든다.

이 트레일을 따라 그랜드 캐니언의 거대한 품안으로 들어섰다. 7.4㎞ 떨어진 ‘인디언 가든’까지 가 볼 수 있을까 해서다. 지그재그 길을 따라 부지런히 고도를 600여m를 낮췄다. 눈 아래로 보이던 봉우리들이 머리 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서야 했다. 가풀막을 오르려면 더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인디언 가든도, 콜로라도강도 만나지 못했지만 아래에서 위로 그랜드 캐니언의 웅장한 모습을 쳐다본 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만했다.



‘빛의 예술’ 앤틸로프 캐니언

모뉴먼트 밸리에서 19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애리조나의 대표 관광도시 페이지(Page)가 나온다. 이 곳에 사진작가들이 생애 한 번 찍고 싶어 한다는 앤틸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이 있다.

앤틸로프 캐니언은 아무 때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바호족이 운영하는 관람 프로그램을 이용해야만 한다. 나바호족 가이드, 다국적 관광객과 함께 트럭을 타고 협곡으로 간다. 협곡은 2개로 나뉘어 있는데 관광객이 많이 찾는 건 위쪽(upper) 코스다. 폭 3m 높이 30m의 협곡은 천장이 열린 구불구불한 동굴을 상상하면 된다.

협곡 안에 들어서면 화려한 물결무늬가 반짝인다. 머리 위 바위 틈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면 환상적인 장관이 펼쳐진다. 정오를 전후한 시간에 방문하는 게 포인트다. 나바호족 가이드는 캐니언에 대한 설명은 물론 사진 찍는 요령·포인트 등을 알려주고 사진도 찍어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이트 밸런스를 ‘구름’ 또는 ‘흐린 날’로 바꾸는 것. ‘빛의 마법’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페이지에서는 ‘호스슈 벤드(Horseshoe Bend)’도 가봐야 한다. 콜로라도강이 말 편자 모양으로 협곡을 휘감고 흐르는 풍경이 장관이다. 광각렌즈로 찍어야 원이 다 보이는 엄청난 크기다. 300m 절벽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이번 취재는 미국 관광청(www.discoveramerica.co.kr)의 협조로 이뤄졌다.

유타·애리조나=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