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자 중 3분의 1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가족들이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 형태로 전파돼 왔다. 병원에서 환자나 의료진이 아닌 사람이 이렇게 많이 감염된 것은 ‘가족 간병’이라는 한국적 특수성 때문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런 간병문화를 메르스 확산의 주 요인으로 꼽았다.
왜 우리는 병원에서 환자 돌보는 일을 의료진이 아닌 가족이 하게 된 걸까.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말기 암 환자 신윤숙(가명·59·여)씨 사례는 가족이 간병에 나설 수밖에 없는 우리 의료 시스템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신씨 가족은 지난 1월 입원 닷새 만에 병원 측으로부터 “보호자가 24시간 상주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상주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두 딸과 남편은 모두 일을 하고 있었다. 급한 대로 간병인을 고용했다. 병원에서 알려준 업체에 전화하니 조선족 간병인이 왔다. 업체는 “인력이 빠듯해 원하는 조건에 맞춰줄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신씨 가족은 곧 알 수 있었다. 24시간 상주하는 간병인은 환자보다 먼저 잠들었다. 신씨가 거동조차 어려워지자 간병인은 오히려 환자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체중 45㎏의 신씨를 휠체어에 앉혀 화장실 가는 게 힘들다며 병실에서 소변을 보라고 하는 식이었다. 간병인 고용 닷새 만에 신씨네는 가족 간병을 택했다.
딸 정혜인(가명·33)씨는 “간병인을 쓴 5일간 엄마를 고생시켰다고 생각하니 죄송했다. 가족들이 하루 3교대로 엄마를 돌보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신씨는 입원 열흘 만에 6인실에서 1인실로 옮겼다. 환자의 안정에도 필요했지만 본격적인 가족 간병을 위한 선택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며 간병하려면 1인실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두 딸은 번갈아 휴가를 냈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은 일손을 놓았다. 그리고 세 식구는 ‘간호’를 배웠다. ‘석션’이라 부르는 기구를 이용해 환자의 가래를 빼주고, 열이 나면 냉찜질을 했다. 수시로 체위를 바꿔주고, 소독솜으로 구강 관리를 하며, 가볍게 상처가 나면 소독을 했다. 모두 간호의 영역에 있는 일이다. 신씨처럼 중증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바쁜 간호사 대신 그들의 전문 영역까지 도맡는 경우가 많다. 식사, 목욕, 배변은 ‘당연히’ 가족의 몫으로 여겨졌다.
의사도 늘 보호자의 도움을 요구했다. 이를테면 상처를 소독하러 병실에 오는 의사는 보호자에게 소독하기 쉽도록 환자의 체위를 바꿔 달라고 했다. 의사가 체위 변경을 돕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보호자는 의사를 돕는 간호사 역할도 하는 셈이다.
입원 3개월 만에 신씨는 숨을 거뒀다. 정씨는 “병원에서 책임질 일 생길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보호자에게 간호를 맡기는 상황이 역설적이었다”며 “그나마 엄마가 마지막 3개월을 가족과 함께 보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3개월 병원비는 2500만원쯤 나왔다. 암 환자여서 건강보험 진료비는 5%만 부담했는데도 그렇다. 간병 기간에 쓴 가족의 식비나 남편이 일을 못해 생긴 손실까지 계산하면 비용은 더 커진다.
병원이 책임져야 할 ‘간호’를 환자 가족이 맡게 되면 이렇게 비용 부담도 환자 몫이 된다. 병원은 인건비 부담 탓에 간호사를 충분히 고용하지 않고 있다. 병원이 간호사를 더 채용하려면 간호수가(의료서비스 가격)가 올라야 하는데 정부는 수가 인상에 소극적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서 환자 가족은 병원에서 꼭 필요한 인력”이라며 “가족 간병이 한국식 병원문화라면 이것은 강요된 문화”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잘못된 문화라고 지적할 게 아니라 간병이 ‘가족의 영역'에서 ‘사회의 영역'으로 바뀌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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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24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