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으로 세상이 이미 멸망한 미래 상황. 물과 기름을 독점한 독재자 ‘임모탄’이 “오직 나만이 너희를 이 황폐한 세상에서 구할 수 있다”며 인류를 노예처럼 지배하고 있다. 영화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인류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독재자와 추종자들에게 저항하는 남주인공 ‘맥스’는 분노에 찬 얼굴로 도로를 질주하며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 떠났지만 결국 실패했다.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사막에 머물며 5명의 여인들(임모탄의 부인들)을 구출하여 미친 듯이 질주하는 여주인공 ‘퓨리오사’는 남주인공과 연대하며 결국 독재자를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최근 개봉된 영화 ‘매드맥스’는 인류의 위기를 공감하며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이고 암울한 현실로 인해 저 멀리 어딘가에 ‘젖과 꿀이 흐르는 녹색 땅’이 있다고 믿으며 맥스처럼 자꾸 멀리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불확실과 불가능의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쉽게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면 비록 희미하게나마 저 멀리 내가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신호등 하나가 깜박거리고 있다. 그 순간이 바로 내가 행동할 동기와 힘을 제공하는 신(神)의 섭리다. 그때 ‘첫발’(first step)을 내딛기 위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행동하라’(Just do it)는 용기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행동하는 한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은 용기를 내어 행동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결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하버드대학교 시계탑에 새겨진 ‘카르페디엠’(carpe diem·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이라는 말 역시 ‘지금 이 순간만이’ 내가 용기를 내어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깨우침이다.
베드로는 최후의 만찬을 마친 뒤 이제 곧 떠나려는 메시아와의 이별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에 외친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요 13:36)
오늘날 위기 앞에 선 우리들의 공통된 외침이기도 하다. 위기와 절망 속에서 우리는 초조해하며 ‘하나님 나라가 도대체 언제 임하는가’라고 바리새인들처럼 현실 이탈을 꿈꾼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라면서 현재를 이탈한 그 어떤 시간과 공간에 함몰되어 있는 신앙을 경계한다.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놓치게 하는 것이 악마의 교묘한 수법이라고 경고한다.
영화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황무지를 떠도는 우리들, 더 나은 삶을 찾아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러나 그 대답은 처음부터 울려 퍼지고 있었다. “희망이 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
그것은 절망을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그래도 지금 이곳을 바꿔 나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지금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이다. 우리의 해답은 저 멀리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이미 우리 손안에 쥐어져 있다. 고통과 절망의 현실 속에서, 이제는 종교도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정종성 교수(백석대 기독교학부)
[시온의 소리-정종성]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입력 2015-06-24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