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포드 감독, 존 웨인 주연의 ‘역마차(Stagecoach)’ 등 여러 서부영화와 ‘백 투 더 퓨처’ ‘델마와 루이스’ 등 유명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미국 서부의 풍광을 상징하고,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연상시키는 신비한 자연경관으로 알려지면서 이름을 처음 들어 본 사람도 낯설지 않게 됐다.
유타와 애리조나를 넘나들며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따라 달리다 모뉴먼트 밸리 여행의 베이스캠프 격인 카옌타(Kayenta)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면 붉은 황무지 위에 기이한 모양으로 솟은 바위기둥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뉴먼트 밸리에는 해발 2000m의 광활한 황무지에 높이 130∼330m에 달하는 기기묘묘한 모양의 바위기둥이 곳곳에 서 있다. 테이블 모양의 넓은 바위는 ‘메사(Mesa)’, 뾰족한 바위는 ‘뷰트(Butte)’로 불린다.
모뉴먼트라고 불리는 이 바위기둥은 신이 창조하고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조각품이다. 1억6000만년전 이곳은 사암으로 이뤄진 고원지대였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의 풍화작용으로 부드러운 부분은 부서져 흙이 됐고, 딱딱한 부분은 각양각색의 기둥으로 남게 됐다. 얼핏 쓸쓸하고 황량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웅장한 풍경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모뉴먼트가 솟아 있는 계곡을 둘러보는 드라이브 코스는 약 28㎞. 말과 마차가 달린다면 서부영화의 한 장면이 그대로 재현될 정도로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길이다. 구석구석 인디언들의 숨결을 느끼려면 나바호(Navajo)족이 제공하는 지프 투어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
계곡 입구 언덕이 최고의 전망 포인트이다. 벙어리장갑 모양의 웨스트 미튼 뷰트(West Mitten Butte), 이스트 미튼 뷰트(East Mitten Butte), 메릭 뷰트(Merrick Butte)로 불리는 세 개의 거대한 모뉴먼트가 삼각형을 이루며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광경은 압도적이다. ‘스타워즈’에서 봤던 우주선이 바위산 사이에서 나타날 것 같다.
일출 때와 황혼녘이면 모뉴먼트 밸리의 붉은색 바위가 더욱 붉게 채색된다. 특히 해뜰 무렵 환상적인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계곡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코끼리 바위(Elephant Butte)’가 나타난다. 이어 세 자매가 손을 잡고 있는 모양의 ‘세 자매(Three Sisters)’, 인디언 종교의식에 등장하는 토템 모양의 ‘토템 폴(Totem Pole)’ 등이 줄지어 여행자를 맞는다. 존 포드 감독 이름에서 따 온 ‘존 포드 포인트’, 여러 개의 모뉴먼트가 어울린 ‘아티스트 포인트’에 닿으면 감탄사조차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인 풍광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광 이면에는 인디언들의 고난이 숨겨져 있다. 1860년대 아메리카 합중국에 의해 자행된 원주민 섬멸작전은 나바호 족의 슬픈 역사의 시작이다. 당시 벌어진 크고 작은 전투에서 섬멸되고 1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포로들은 뉴멕시코주의 합중국 포로수용소로 장장 560여㎞를 끌려갔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대표였던 셔먼 장군은 이들과 협상에서 3곳의 선택권을 줬다. 동부의 비옥한 초지와 포로수용소 인근의 목초지 그리고 모뉴먼트 밸리였다. 나바호족은 선조의 얼이 살아 숨쉬는 모뉴먼트 밸리를 택했고 이것이 바로 나바호 족 자치정부가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다.
모뉴먼트 밸리는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속해 있다. 정식 이름도 ‘모뉴먼트 밸리 나바호 부족 공원(Monument Valley Navajo Trival Park)’으로 북미 최대 원주민 부족인 나바호 인디언들의 성지다. 약 18만명이 이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1250년쯤부터 대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인디언의 삶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다. 이들은 돔 형태의 전통 흙집 ‘호건’을 짓고 살고 있으며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팔기도 한다. 밸리 곳곳에는 이들이 기르는 양과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모뉴먼트 밸리에서의 하룻밤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해가 기울면서 시시각각 다른 색 옷으로 갈아입는 바위산은 태양보다 더 붉게 물든다. ‘나바호 타코’로 저녁식사를 한 뒤 숙소인 ‘호건’ 대신 황야를 택했다. 호건 바로 옆에 매트리스와 침낭을 펼치고 누워 모뉴먼트 밸리의 살아숨쉬는 자연을 느끼기로 한 것. 인근 다른 호건에 투숙한 유럽의 젊은이들도 모두 호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호건 뒤 거대한 ‘고래 바위’ 위로는 별들이 쏟아질 듯 내리고 그 반대편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밤이 깊어지면서 황무지에는 모래바람이 수시로 휩쓸고 지나갔고, 새벽녘에는 수십 마리의 말들이 질주하는 소리도 가깝게 들렸다. 서부영화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몸과 정신은 한결 가벼웠다. 존 웨인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모뉴먼트 밸리=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