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그리스, 회생의 길 걷게 될까

입력 2015-06-23 03:33

그리스발 시한폭탄이 이번에는 멈출 수 있을까. 4개월을 끌어온 그리스와 채권단 구제금융 협상에 화해무드가 형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막판 진통이 한창이다. 30일 채권단 구제금융 프로그램 종료와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16억 유로를 갚아야 할 시점이 다가오면서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그리스는 이달말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결과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당초 그리스는 채권단의 긴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채권자를 ‘약탈자’라고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양측이 각자의 입장에서 물러나지 않으면서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후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란 전망이 시장에서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이 이어지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그리스는 세금 면제 혜택을 축소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채권단도 추가 지원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전히 안심하기엔 이르다.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은 2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어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을 논의할 회의를 이번 주 중에 다시 개최하기로 했다. 사실상 유로그룹 회의 이후 열린 유로존 긴급 정상회의에서 협상 타결은 물 건너간 것이다.

◇그리스와 채권단의 지난한 힘겨루기와 EU 긴급 정상회의=영국 가디언지는 21일(현지시간) 채권단이 그리스 측에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6개월 연장하고 구제기금을 최대 180억 유로 추가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상황은 그리스가 내놓은 새로운 협상안이 받아들여지면서 반전됐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가디언에 따르면 8만명 한도 내에서 연금 삭감, 퇴직수당 삭감, 개인과 기업에 대한 세금 추가 부과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내총생산(GDP) 1%에 해당하는 재정긴축에도 나서기로 했다.

2010년 첫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는 이후 재정 건전화 계획을 수립해 이행해왔으나 올해 초 긴축에 반대하는 급진 좌파연합 시리자가 집권하면서 트로이카(EU, 유럽중앙은행(ECB), IMF)와 갈등을 빚어 왔다. 채권단은 그리스에 연금제도를 개혁하고 부가가치세 면제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리스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 왔다. 그리스는 지난 14일 협상안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추가 제안을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은 그리스 문제를 논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유로그룹의 예룬 데이셀블룸 의장은 “그리스의 개혁안은 재정수지 목표를 달성하기 부족하다”며 “그리스는 새로운 협상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양측의 힘겨루기로 꼬인 매듭이 풀리지 않자 채권단은 결국 22일(현지시간) 긴급 정상회의를 열었다. 시장은 양측이 ‘정치적 결단’을 통해 극단적 상황을 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당초 협상 결렬이 우세했지만 디폴트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따른 혼란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타결 쪽으로 기울고 있는 모양새다.

이날 열린 유로존 긴급 정상회의에서 협상 타결은 어려워지면서 결국 공은 25∼26일 열리는 EU 정상회의 등 추후 모임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럼에도 그리스 유로존 탈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유럽과 세계 금융시장에 미칠 후폭풍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디폴트·그렉시트 가능성과 영향은=화해 무드가 진행되고 있지만 만에 하나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디폴트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내에서는 구제금융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으면서 뱅크런이 진행되고 있다. 디폴트 위험이 높다는 인식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주(15∼19일) 그리스 은행에서 빠져나간 금액이 약 50억 유로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특히 19일에만 약 15억 유로가 인출됐다.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그리스 중앙은행 야니스 스투르나리스 총재는 구제금융이 지원되지 않을 경우 디폴트는 물론 그렉시트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회 통화정책 보고 자리에서 “협상 타결에 실패하면 먼저 디폴트가 발생하고 결국 유로존과 EU 탈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환율이 급등하고 물가가 치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유럽 일부 국가들은 디폴트 선언 시 손실이 어느 정도 될지 계산하고 나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은 그리스 디폴트 시 자국 재정 손실이 연간 10억 유로 정도일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그리스 문제가 장기화돼 주요 투자 주체들과 금융회사가 그리스 관련 익스포저(피해예상 규모)를 최소화해 대외 파급효과가 2011년 경제위기 때처럼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디폴트 선언이 바로 그렉시트로 이어질 것이란 데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득과 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유로존을 빠져나와 옛 통화인 드라크마화를 도입할 경우 유연하게 환율 정책을 쓸 수 있어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렉시트로 발생할 비용이 클 수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로화 대비 드라크마화 가치가 즉각 50%가량 폭락하고, 35%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겪을 것으로 추산했다. IMF는 이 경우 그리스 GDP가 현재보다 8%가량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