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싸우는 사람들] ⑤ 이진수 인하대병원 감염관리실장

입력 2015-06-23 02:23
이진수 인하대병원 감염관리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출입문을 드나드는 방문 환자의 체온을 체크하고 손 소독을 권유하는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인천=서영희 기자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메르스 감동'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뜨는 병원이 있다. 바로 인하대병원이다. 다른 병원이 이송을 거부하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환자를 받아 성실히 치료한다는 점과 의료진의 노고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며 좋은 평가가 이어지는 것이다.

인하대병원은 지난 1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21번 환자(59·여)를 격리치료 중이다. 이 환자는 이번 주 퇴원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물론 병원 내 감염 등 2차 전파 우려도 없다.

지난 19일 오후 2시쯤 병원을 방문했다. 1층 로비는 평온했다. 토요일 오후처럼 느껴질 정도로 환자들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환자와 보호자 수십명이 진료접수와 퇴원수속을 밟느라 북새통을 이룰 시간이라 확연히 대조됐다. 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메르스 확진 환자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외래환자가 격감해 지금은 평소의 60% 수준”이라고 말했다.

인하대병원은 메르스 환자 추가발생 및 혹시 모를 지역사회 전파를 막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병원 측은 21번 환자를 받은 뒤 출입구를 지하주차장 연결통로 1곳과 정문 1곳으로 제한하고 나머지 출입구를 모두 폐쇄했다. 통제된 출입문에서는 드나드는 모든 사람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메르스 범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이진수(46·감염내과 교수) 감염관리실장은 “만약 체온이 높으면 바로 선별진료실로 이송해 즉각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비상대응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심환자가 병원에 한발도 들여놓을 수 없는 체제를 갖춘 셈이다.

인하대병원을 찾은 메르스 의심자는 병원 밖 격리시설에서 진료를 받는다. 확진환자는 지하 1층 한쪽에 마련된 격리음압병실로 옮긴다. 일반 환자와의 동선이 완전히 다르다. 회복단계인 21번 환자도 이 병실에서 20일째 치료를 받고 있다.

인하대병원은 평택성모병원에서 환자를 받은 뒤 수많은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지난 1일 밤 환자수용 사실이 알려지자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환자 정보를 섣불리 알릴 수 없었던 이 실장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다른 감염자는 없을지, 의료진은 무사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바로 코호트 격리를 취했고, 이후 추가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이 실장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는 “평택성모병원에서 14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써 메르스에 감염된 21번 확진환자를 맡아달라는 질병관리본부 측의 요청을 받았을 때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 생각이 안 떠올랐다”고 했다. 14번 환자는 나중에 슈퍼전파자로 확인됐다. 당시 21번 환자는 몇몇 병원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한 상태였다.

21번 환자가 입원한 음압병실은 전쟁터다.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은 후 중증폐렴으로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지난 1∼10일 이 실장의 수면시간은 하루 2∼3시간에 불과했다.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린 지금은 새벽 1∼2시쯤 귀가한다. 하지만 병원장, 간호팀장, 행정팀장, 시설팀장 등 주요 관계자가 참석하는 오전 7시30분 비상대책회의에 매일 참석해야 한다.

이 실장은 음압병실에 하루 두 차례 들른다. 회진 준비부터 만만치 않다. 허리에 공기정화장치가 달린 C등급 방역복은 소독시간을 포함해 벗는 데만 40분 걸린다. 그나마 혼자 할 수 없어 도움이 필요하다. 폐렴환자는 인공호흡기를 통해 비말이 많이 배출된다. 공기정화기가 필수인 이유다.

고생은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중환자 1인당 간호사는 5∼6명이다.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는 세밀한 관찰이 필요해 24시간 내내 1∼2명씩 더 배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3주 가까이 반복되고 있다. 식사 때도 병동을 떠날 수 없어 병원 안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이 실장은 “메르스 증상이 잠복기가 지난 뒤에 나타나기도 하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병원이 메르스로부터 완벽히 벗어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의료진이 능동감시에 준하는 체제를 항시 갖추고 언제 어디서 또 환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준비를 철저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인천=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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