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재난] “환자 발생·경유 병원 뒤늦게 공개 국민 알권리 박탈” 정부 상대 첫 부작위 위법확인소송

입력 2015-06-22 02:41
보호복을 입은 메르스 의심환자와 의료진이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출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보건 당국은 24일까지인 이 병원 부분 폐쇄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병주 기자

메르스 사태 한 달여 만에 169명이 감염됐다. 보건 당국의 방역 실패로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1만2000여명이 집이나 병원에 격리됐고, 수많은 국민이 사회·경제·심리적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껏 제대로 된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의 허술했던 메르스 초동 대응에 법적 책임을 묻는 첫 소송이 제기됐다.

정부의 ‘사과’는 지금껏 세 차례 있었다.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나온 황교안 총리의 사과는 세 번째였다. 황 총리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초기 대응에 미진한 점이 있었던 데 대해 새로 총리가 된 입장에서 국민께 송구하다”고 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8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국민께 송구하다”고 했다. 모두 국민을 향한 대국민 사과라기보다 의원들의 추궁 끝에 나온 ‘대국회 사과’에 가까웠다.

정부의 첫 사과는 15번째 환자가 나온 지난달 31일에 있었다. 문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을 시작하며 “국민 여러분께 심려와 불안을 끼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먼저 드리겠다”고 했다. 국무총리 직무대행이던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지난 7일 ‘대국민 담화’에는 사과가 없었다. 대신 “대통령께서도 환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국민을 향한 사과는 오히려 민간기관에서 나왔다. 삼성서울병원(14일)과 강동경희대병원(19일)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두 병원은 메르스 환자 발생의 책임이 있는 동시에 정부의 방역 실패에 따른 피해자이기도 하다.

정부는 사과 대신 ‘돈’을 풀고 있다. 피해자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약속했다. 사망자 장례비용을 보전해주고 저소득층에 긴급생활비 지원을 하고 있다. 피해 의료기관에는 건강보험료를 평소보다 일찍 지급하고 ‘메디컬론’의 대출 이자도 싸게 해주겠다고 발표했다.

법무법인 한길의 문정구 변호사는 “정부를 상대로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 위법확인 소송을 지난 19일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고 21일 밝혔다. 메르스 환자 발생·경유 병원을 뒤늦게 공개한 건 정부가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니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문 변호사는 소장에서 “정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첫 확진자 발생 후 19일이 지나서야 메르스 환자 경유 병원을 공개했다”고 지적했다. 밀접한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만큼 환자가 거쳐 간 병원을 공개해 다른 국민이 주의하게 할 의무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 감염병 발생 시 관련 정보 등을 국민에게 알리도록 법률에 명시돼 있지만 정부는 그 구체적 절차인 시행령을 마련해두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 변호사는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박탈하는 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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