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 사는 고3 박모(18)양은 지난달 13일 오후 4시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친구 4명과 진열대를 구경하고 있었다. 40대 남성 A씨가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당황한 박양은 친구들에게 이를 알렸다. 여고생 5명은 A씨를 뒤쫓아 갔다. 잠시 후 그가 다른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상한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여고생들은 확실한 물증을 잡기 위해 ‘묘수’를 고안했다. A씨의 범행을 유도해 ‘현장’을 잡자는 계획이었다. 친구 이모(18)양이 A씨를 앞질러 걸어갔다. 그가 지나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게 앞에 미리 도착해 구경하는 척했다.
A씨는 걸려들었다. 그는 이번에도 이양의 엉덩이에 슬쩍 손을 댔다. 이양이 “아저씨 뭐하시는 거예요”라고 크게 소리치자 나머지 친구들은 미리 약속한 대로 A씨를 빙 둘러쌌다.
그는 “무슨 소리냐”며 발뺌하다 어눌한 목소리로 “4명밖에 안 만졌다”고 받아쳤다. 여학생들을 얕잡아 본 듯 “어른도 아닌데 누가 너희 말을 믿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허리춤에 걸쳐 있던 벨트를 풀면서 “너희가 스킨십을 아냐”고 협박하며 욕설도 내뱉었다.
큰소리가 오가자 행인들이 걸음을 멈췄고, 그 틈에 박양 일행 중 한 명이 112에 전화를 걸었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A씨를 검거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1일 A씨에 대해 강제추행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CCTV가 확보되지 않아 A씨 혐의에 대한 추가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단계”라며 “여고생들이 기지를 발휘했다”고 말했다.
김미나 홍석호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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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지 발휘 성추행범 잡은 여고생들
입력 2015-06-22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