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카들 싸움에…” 10개월째 법정 증언 거부, 이기화 前 태광그룹 회장 500만원 과태료 부과 사연

입력 2015-06-22 02:19
태광그룹 창업주 고(故) 이임용 회장의 유산을 둘러싼 2세들의 법정 다툼에 이기화(81) 전 태광그룹 회장이 수백만원 과태료를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상속 과정을 증언해 달라는 법원의 증인 출석 통보를 “조카들 소송에 끼어들기가 곤란하다”며 10개월째 거부하고 있어서다. 이기화 전 회장은 이임용 회장의 처남이자 ‘창업 동지’다.

상속 분쟁의 시작은 2010년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이임용 회장 사망 당시 둘째딸 이재훈(58)씨와 셋째아들 이호진(53) 전 태광그룹 회장은 부동산과 주식 등을 각각 13분의 2씩 상속받았다.

그러나 검찰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이임용 회장의 차명주식 등이 드러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재훈씨는 2012년 12월 “이호진 전 회장이 아버지의 주식, 무기명채권 등 차명 재산을 혼자 차지해 상속권을 침해당했다”며 “현금 78억6000여만원과 태광산업 주식 10주, 흥국생명 주식 10주 등을 지급하라”는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전현정)는 이임용 회장의 상속 재산을 확정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이기화 전 회장에게 증인 출석을 요청했다. 태광그룹의 상속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는 판단에서다. 이임용 회장의 부인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형집행정지 중이던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이기화 전 회장의 증언이 필요한 부분은 ‘이임용 회장이 호진씨에게 차명주식을 귀속시켰다’는 약정서의 진위 여부이다. 호진씨 측은 상속인들이 작성한 것이라며 재판부에 이런 약정서를 제출했고, 재훈씨는 “약정서가 실제와 다르다”는 이기화 전 회장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낸 상태다. 녹취록이 증거로 인정되려면 이기화 전 회장의 법정 증언이 필요하다.

재판부는 “이기화씨는 이번 사건의 중요한 증인”이라며 지난 3월 구인장을 발부한 데 이어 4월에는 500만원 과태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이기화 전 회장은 과태료 처분이 부당하다며 이의신청서를 냈고 지난 4일 변론기일에도 불참했다.

법원 관계자는 “민사재판에서 실제로 구인장을 집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반드시 증인으로 부를 필요가 있다고 재판부가 판단할 경우 강제구인까지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인장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경찰이 집행한다. 법원은 다음달 23일 열리는 변론기일에 앞서 이기화 전 회장에게 다시 한번 증인 출석 요구서를 보낸 상태다. 출석할 경우 과태료는 면제된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