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앞서 원자력발전소를 세우고 전기를 생산했던 나라들은 주민들과 융화를 추구하며 원전과 지역사회의 공존을 가능케 했다. 원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불안감을 해소하고 있고, 지역 발전을 위한 경제적 혜택도 제공한다. 주민들의 협조 없이는 원전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는 경험적 바탕에서다.
◇사고 대응 비상훈련도 지역사회 주도로=원전 정책에 있어 높은 수용성을 자랑하는 핀란드의 경우 원전 사업자가 이미 지역사회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세 비중이 높은 핀란드에서 많은 세금을 내는 원전 사업자는 지역의 중요 납세자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발전소는 해당 지역 내 기업이나 지자체가 직접 투자해 설립하는 형태다. 원전 사업자가 지역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대 원전 부지인 올킬루오토에서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는 비상대응 훈련도 원전 사업자나 정부가 아닌 지역사회 주도로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원전 사업자인 티비오(TVO)사는 철저히 뒤에서 지역사회가 하는 훈련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두려운 존재’로 비치기 쉬운 원전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기 위한 홍보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핀란드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TVO 광고를 보긴 어렵지 않다.
파시 투오히마 TVO 대변인은 지난 4월 23일 핀란드 올킬루오토에서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원전 운영자가 전면에 나서면 지역주민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철저히 뒤에서 지원하고 지역사회의 우려를 풀어주기 위한 노력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강조했다.
◇접하기 쉽게 적극적으로 정보 공개=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노장 원전은 1988년 세워질 당시 우여곡절을 겪었다. 주변에 흐르는 센강이 폭우가 내렸을 때 원전을 덮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주민들은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에 원전 운영사는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프랑스전력공사는 주기적으로 안전검사와 주변 환경평가를 실시하고, 원자력 안전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청은 원전을 불시 점검해 매달 홈페이지를 통해 결과를 공개한다. 지역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신문을 만들어 시청이나 학교 등 공공장소에 비치하기도 한다.
이와 별도로 주민, 정치인,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민간 기구인 지역정보위원회도 운영하고, 한 달에 한 번 시 관계자, 프랑스전력공사 관계자, 지역주민들이 모여 간담회를 갖는다.
프랑스는 원전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 북부 노르 지역의 그라블린 원전 주변 2㏊ 규모 양식장은 원전에서 나오는 온배수를 이용해 도미·농어·광어를 연간 2500t 생산한다.
◇퇴직 직원들이 참여하는 지역 봉사활동=미국의 원전 운영사인 엔터지의 경우 지역사회 수용성 제고를 위해 저소득층을 위한 재정지원 프로그램과 교육활동, 자원봉사 프로그램, 환경보전 프로그램, 지역경제 발전투자 등을 실행하고 있다. 특히 계약직을 포함한 모든 직원뿐만 아니라 퇴직 직원들까지 ‘커넥터’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직원들이 주체가 돼 비영리 단체처럼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회사는 이를 보조하는 방식이다.
캐나다 종합전력회사인 온타리오사는 기업시민 프로그램을 통해 비영리 환경·교육·지역 단체들에 대해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또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용역이나 물건을 온타리오 소재 소매 업체들로부터 구매해 지역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지역경제 견인하는 친환경 원전=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을 가동했던 영국은 셀라필드 원전단지를 국립공원 레이크 디스트릭트 인근에 세웠다. 그만큼 원전의 안전성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셀라필드와 레이크 디스트릭트 사이에 위치한 셀라필드시는 ‘원전 특수’를 누리며 조용한 어촌마을에서 영국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변모했다. 원전에서 근무하는 민간인 신분 직원들이 유입됐고, 관광객들도 몰렸다.
시스케일 남쪽에서 목축업으로 먹고사는 드릭마을 내에는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는 방폐장이 가동 중이다. 처분장과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떼가 뛰어놀 만큼 드릭은 청정한 환경을 자랑한다. 처분장 운영사 측과 주민들은 연간 서너 차례 공식 간담회를 가지면서 지역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앤디 헌트 두산밥콕 CEO는 “지역주민들이 원전시설을 통해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주민들이 원전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원전 운영사와 이를 관리·감독하는 정부 당국이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간보다 민의가 최우선=독일은 1970년대 대규모 원전 건설 과정에서 주민들이 화염병을 던져가며 반대할 정도로 첨예한 갈등을 겪었다. 1979년 독일 정부는 고어레벤 지역에 방사성 폐기물 종합처리장을 건설키로 하고 1986년부터 지질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시민과 환경운동가가 결집해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이 장기간 이어졌다. 결국 2013년 독일 연방정부와 의회는 2031년까지 새 부지를 선정하기로 합의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민의를 수용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 선진국들 ‘원전 신뢰’ 위해… 지역사회와 소통 또 소통
입력 2015-06-22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