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명동 한복판. 깔끔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기타를 들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곱슬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했다. 한때 명동성당 앞을 지나면 가수 ‘해바라기’ 곡 ‘모두가 사랑이에요’ ‘내 마음의 보석상자’ 등을 부르는 거리 가수들이 있었는데 그 중년 남성의 아우라(aura)가 그들 같았다. 그의 노래는 복음성가였다.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거리의 중년 가수’는 진짜 가수다. 정확히 ‘가수였다’. 1980년 전후 ‘장욱조와 고인돌’이라는 그룹이 젊은이들의 감성을 뒤흔들었다. 대표곡은 ‘고목나무’였다.
‘저 산마루 깊은 밤 산새들도 잠들고/ 우뚝 선 고목이 달빛 아래 외롭네/ 옛 사랑 간 곳 없다 올리도 없지만은/ 만날 날을 기다리며…’
그 밴드의 싱어가 지금 명동서 복음성가를 부르는 정기종(60·명동 생명의숲교회) 목사다.
명동은 대한민국 상징 거리이다. 이곳에서의 노방 전도 또한 상징성이 짙다. 수많은 노방전도 사역자들이 몰려들어 여리고성 앞에서 나팔을 불 듯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친다. 은사의 확신 때문이다.
그러나 정 목사는 명동에 뿌리 내린 사역자다.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길 건너편 상가 건물 4층에 설립 6년째의 ‘명동 생명의숲교회’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 교회는 명동의 크리스천 구두미화원을 중심으로 한 성경공부 모임이 교회로 발전됐다. 동역자 임장환 목사의 헌신이 컸다.
“명동은 한국을 보여주는 창입니다. 수많은 외국 관광객이 이곳을 찾지요. 명동성당은 그들에게 순례코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없어요. 노방전도가 고작이었습니다. 저는 이 화려한 곳에 기독교 랜드마크를 세우려는 게 아닙니다. 이웃을 위해 손을 내미는 회중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합니다. 사마리아인이 됐든, 낮의 직장인이 됐든, 밤의 노숙인이 됐든 관계없습니다. 십자가 불빛 따라 온 이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되니까요.”
21일 주일. 99㎡(30평) 넓이의 예배당 안은 꽉 찼다. 주일 근무 직장인, 구두미화원 등 출석교인들이 정 목사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했다. 노숙인도 적잖았다. 여느 교회처럼 예배 후 식사를 통한 코이노니아도 이어졌다.
“제가 지금은 목사님이 된 장욱조(서울 한소망교회) 형의 전도로 예능교회에 출석했어요. 십수 년 전 그 교회 봉사팀 ‘긍휼팀’과 함께 노방전도를 하곤 했는데 그곳이 명동권역 쁘렝땅백화점(현 을지로 한화빌딩)이었어요. 명동권역 직장인과 노숙인 등에게 예수 사랑을 알게 하고 싶었죠. 500∼600명이 제 찬양에 귀 기울이는 것을 보고 언제가 이 명동에 ‘생명나무 숲’을 만들리라고 다짐했어요.”
정 목사는 화려한 명동에서 자신의 의가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명동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명동의 밤은 쥐 죽은 듯하다. 그 조용한 골목에 노숙인들이 박스를 이용해 잠을 청한다. 정 목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급식과 교통비를 주었다. 말씀 요절을 외우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제 솔로 데뷔 앨범이 ‘정과 이별’입니다. 세상과 정을 쌓되 세상적인 것과 이별해야 합니다. 저는 8년을 한국, 10년을 일본 무대에서 화려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예수를 몰랐어요. 세상적인 것에 집착했었죠. 일본에서 유명 가수가 되어 태극기를 꽂으리라 하고요. 예수 신앙을 꼽는 것을 왜 몰랐을까요. 지금 저는 명동에서 ‘명량대첩’ 하는 자세로 삽니다. 부족하나 기쁩니다.”
명동 뒷골목은 허름하다. 하지만 이 허름한 곳도 임대료가 명동이라는 이름값을 한다. 오는 8월 임대기간 만료다. 방법은 없다. 늘 그랬다. 그럼에도 ‘다윗은 자기의 길로 가고 사울도 자기의 궁으로 돌아’(삼상 26:25·새번역)가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노숙자를 섬기다 명동권에서 세 번 교회를 옮겼습니다. 도상의 생활이었죠. 노숙자 전문선교를 하는 건 아닙니다. 교회가 당연히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거죠. 다른 지역과 달리 명동은 여성 노숙인 비중이 높습니다. 학력이 있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는 이렇게 배웠어도 왜 공허할까요? 예수를 중심에 두지 않아서입니다."
명동은 메르스 여파로 사람들이 줄긴 했어도 쉴 새 없이 인파가 오갔다. 화려했다. 그러나 교회는 없었다. 아니 있어도 보이지 않았다. 정 목사가 생명의 숲을 만들고 싶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미션&피플] 정기종 명동 생명의숲교회 목사 “명동 한복판, 노래로 생명나무 심어요”
입력 2015-06-22 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