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재찬] 만파식적

입력 2015-06-22 00:10

‘2015 경주세계피리축제 만파식적’이 21일 막을 내렸다. 행사의 모티브가 된 ‘만파식적(萬波息笛)’은 ‘온갖 힘든 일을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으로 삼국유사 기이 편에 등장하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신라 제31대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이 생전에 짓다가 만 사찰 감은사를 완공했다. 죽어서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은 신라를 지켜줄 보물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 하나를 보냈다. 신문왕은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는데, 적군이 물러갔고 질병이 고쳐졌으며, 가뭄에는 비가 내렸다고 한다. 나라의 걱정과 근심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구국피리’인 셈이다.

만파식적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공포의 감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도 깨끗이 사라지고, 40여년 만에 들이닥친 가뭄도 싹 물러가며, 이 와중에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북한의 고약한 심보도 고쳐졌으면 하는 게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만파식적 설화에는 피리 재료인 대나무에 대해 이런 내용도 담겨 있다. 섬에 심겨진 대나무가 낮에는 갈라졌다가 밤에는 합쳐지기를 반복했는데, 왕이 그 이유를 묻자 바다의 용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손뼉을 칠 때 한 손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이 맞닿아야 소리가 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 대나무 역시 둘이 합쳐진 뒤에야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흐트러지고 갈라진 마음부터 먼저 하나로 모으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메르스 감염이 확산되면서 정부의 무능을 빗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까지 떠돈다. 원망 섞인 한숨 속에서도 환자들 곁으로 뛰어들어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구급대원, 방역요원들의 헌신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요술피리 같은 만파식적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방진복 속으로 흐르는 그들의 땀방울이 심란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불씨가 되어주면 좋겠다.

박재찬 차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