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관련 기본조약과 4개 협정, 이른바 ‘1965년 체제(65체제)’를 구성하는 문서가 22일로 조인 50주년을 맞았다. 이로써 그간 한·일 양국은 깊은 교류와 협력이 가능했다. 한편으론 갈등구조도 이어졌는데 이는 ‘65체제’의 태생적 한계 탓이 크다.
내가 지난 8일자 칼럼에서 소개한 대로 기본조약은 1910년 한·일 합병의 불법성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50여년 전 박정희 군사정권이 자본 부족 해소와 대일 경제협력 등 눈앞의 성과에 치중한 결과인데 첫 단추를 잘못 꿴 여파는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그간 끊임없이 일본의 반성을 촉구해왔으나 일본정부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배상을 포함한 모든 양국 간 문제는 65년 기본조약을 통해 완결됐다”는 입장을 고집할 뿐이었다. 한쪽은 과거사를 강조하고 다른 한쪽은 국가 간 조약만을 앞세우는 한 갈등구조는 극복될 수 없다. 바로 ‘65체제 폐기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65체제는 90년대 탈냉전시대를 맞아 흔들리게 된다. 이 체제는 동서대립의 냉전 속에서 미국 중심의 한·미·일 결속을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탈냉전기의 혼란을 우려한 일본정부가 ‘고노 담화’(93년), ‘무라야마 담화’(95년)를 연이어 내놓고 과거사 반성에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폐기론은 물밑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특히 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한·일 신선언’은 일본의 과거사 반성·사과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한 양국의 협력을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의 태도 변화가 65년 조약으로 모두 종결됐다는 기존의 65체제 해석과 충돌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추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일본은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성(고노 담화)은 하면서도 법적 배상은 모르쇠의 입장이다. 급기야 2012년 아베정권이 재출범한 후 고노 담화의 진위검증(2014년)을 벌이고 무라야마 담화 수정론에 불을 지피면서 아예 65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오는 8월로 예정된 ‘아베 담화’도 수위 여하에 따라 65체제의 훼손으로 작용할 것임을 아베 총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65체제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주장은 한국 사법부에서도 나왔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한국정부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점(부작위)을 들어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2012년 5월 대법원은 65년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한 식민지 지배 책임 일반이 해결되지 않았고 개인청구권도 소멸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바야흐로 65체제 폐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65체제를 교체할 틀은 있는 것인가. 첫 단추가 꼬여버린 65체제는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 그렇지만 그 자체를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65체제가 수명을 다한 것처럼 기우뚱거리고 있어도 대안 없는 폐기는 한반도의 장래와 역내의 역학관계 차원에서 찬성하기 어렵다.
바람직하기로는 65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틀에 대해 한·일 간 충분히 논의해서 마련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가 몇 년째 대화다운 대화도 단절된 상황에서는 기대난이다. 이런 때일수록 미래를 내다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서로의 흠결을 지적하기보다 동아시아의 미래라는 공동의 목표를 마련하고 그에 초점을 모아야 한다. 한국정부는 냉전 종료 직후인 90년대 일본이 보여준 전향적인 방향 전환을 평가하는 한편 미래 논의와 역사 문제를 별도로 추구하는 지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올해 ‘한·일 2015체제’의 새로운 50년이 열렸으면 한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한·일 수교 50년(2)-미래 내다봐야
입력 2015-06-22 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