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메르스 괴담 처벌 쉽지 않네… 보건소 간부가 신고하자 경찰 “업무 마비 증명하러 오라”

입력 2015-06-20 02:26

확진 환자를 자처하며 동네에 “메르스를 퍼뜨리겠다”고 협박한 사람이 있다. 불안을 느낀 주민은 보건소로 신고했고 보건소는 다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신원 조회를 통해 그가 메르스 확진 환자도 아니고 자택격리 대상자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메르스 공포에 떨고 있는 동네에 기름을 끼얹은 이 사람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서울 강남보건소에는 지난 17일 “메르스 확진 환자를 자처하며 메르스를 퍼뜨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동네에 있다”는 내용의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자는 “강남구 개포동 모 아파트 단지에 사는 유모(67)씨가 그러고 다닌다”며 신상 정보까지 알려줬다. 강남보건소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신원 조회에 나선 수서경찰서는 유씨가 메르스 환자 또는 자택격리 대상자가 아니라고 확인했다.

실제로 19일 찾아간 강남구 개포동은 조용했다. 다만 “메르스 확진자가 돌아다닌다는 유언비어가 있지만 거짓이니 안심하라”는 보건소 안내 방송이 나오는 등 흉흉한 분위기는 감출 수 없었다.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경찰은 신고자인 보건소 A팀장에게 경찰서 출석을 요구했다. 피해자 진술을 통해 ‘유씨 때문에 보건소 업무가 마비됐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A팀장은 메르스 여파로 바쁜 와중에도 경찰서에 갈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메르스 괴담 또는 유언비어 유포자에 대해 주로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나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19일 전국 경찰지휘부 화상회의를 열고 유언비어 유포 사례에 대한 적극적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씨의 사례는 처벌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업무방해 또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려면 명확한 피해 사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씨가 거짓말로 떠들고 다녔다고 해서 보건소 업무가 심각하게 방해받았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했기 때문에 협박죄 적용도 검토할 수 있지만 특정인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행위가 이뤄져야 처벌이 가능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해프닝의 경우 유씨 본인이 ‘내가 메르스 환자’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만약 메르스와 관련 없는 병원이나 식당을 지칭하며 ‘여기 메르스 환자가 있다’고 말했다면 병원·식당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적용되는데 이 경우는 해당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더펌의 정철순 변호사는 “특정인에게 겁을 주려는 의도 없이 거짓말만을 한 걸 가지고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A팀장은 경찰 조사에서 유씨의 행위 때문에 업무에 얼마나 지장을 초래했는지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A팀장은 “지역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신고한 건데 경찰은 ‘이게 무슨 업무방해가 되느냐’는 식으로 말해 속이 상했다”고 전했다.

황인호 강창욱 심희정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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