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이겼다 ‘힘 합친 14일’… 메르스 극복 ‘장덕마을’ 드디어 통째 격리 해제

입력 2015-06-20 02:31
메르스 환자 발생으로 2주 동안 마을이 통째로 격리됐다가 19일 해제된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에서 이성자씨(오른쪽)와 최복희씨가 얼싸안으며 반가워하고 있다. 이들은 “위 아랫집에 살며 자매처럼 지냈는데 그간 얼굴도 보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합뉴스

19일 오전 7시30분쯤. 마을이 격리됐던 지난 7일에 이어 다시 찾아간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은 맑은 하늘에 평온한 모습이었다. 마을 입구 비상천막은 그대로였지만 경찰 차량과 ‘출입 통제판’은 보이지 않았다. 20여명의 취재진은 주민이 보일 때마다 “그동안 어땠느냐”고 질문 공세를 폈다.

“조마조마했어요. 어찌나 갑갑했는지 하루가 열흘 같았지요.”

자전거로 읍내에 나가 농약을 사 오던 60대 김모씨는 “이젠 살 것 같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손수레를 밀며 집을 나서던 박진순(77·여)씨는 “마을에서 300m쯤 앞에 있는 아들집에 가지 못하고 손주 얼굴도 볼 수 없었다”며 “사흘에 한 번 병원에서 받았던 물리치료도 그동안 못 받아 허리가 몹시 쑤신다”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오늘 아침 6시에 밥 먹고 밭에 가보니 마늘이 다 꼬실라져(말라 비틀어져) 있더라”며 아쉬워했다. 이 마을은 이날 0시를 기해 격리 해제돼 14일간의 ‘감옥생활’에서 풀려났다.

주민들은 눈을 뜨자마자 논밭으로 달려가 농작물을 둘러보고, 순창읍내에 나가 약도 타고 생필품도 샀다. 집안에 갇혀 있던 11명의 초·중·고교생도 가방을 메고 학교로 달려갔다. 성인식(58) 이장은 안내방송을 통해 “주민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드디어 읍내에 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조심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주민들은 보름 만에 보는 이웃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다. 마스크를 쓴 최복희(68·여)씨와 이성자(57·여)씨는 서로 끌어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은 “위 아랫집에 살며 자매같이 지냈는데 왕래를 하지 못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읍내에 산다는 김판기(68)씨는 “홀로 계신 어머니(88)를 뵙지 못했다”며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감자를 사가지고 왔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마을은 경기도 평택성모병원에 다녀왔던 A씨(72·여)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난 4일부터 통째로 격리됐다. 102명의 주민은 대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마음을 졸이며 생활해야 했다.

그러나 전북도와 순창군의 발 빠른 조치와 주민들의 헌신적인 협조로 단 1명의 의심환자도 나오지 않아 전국의 모범적인 방역 사례로 꼽히고 있다. 특히 주민들은 며칠 전 눈을 감은 A씨를 떠올리며 ‘메르스를 퍼뜨린 사람’으로 잘못 알려진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군청과 언론에 당부하기도 했다.

그 사이 마을에는 전국 35곳에서 1억1590만원어치가 넘는 현금과 물품이 답지했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오병조(81)씨는 “도와주신 모든 분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창군은 이날도 온 마을을 소독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마을을 찾은 황숙주 순창군수는 “주민들이 고생을 모두 이겨내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농작물 수확과 판매, 마을 환경 정비, 건강검진 등 지원책을 찾겠다”고 말했다.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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