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체력과 불굴의 투혼 그리고 험난한 여정까지. ‘윤덕여호’에게서 ‘히딩크호’의 향기가 난다.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한 ‘윤덕여호’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호’와 많이 닮았다. ‘윤덕여호’가 토너먼트에서도 ‘히딩크호’와 같은 길을 걸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거스 히딩크(사진) 감독은 무엇보다 체력을 중시했다. 체력이야말로 ‘축구 후진국’ 한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체력 강화 비책은 20m를 반복해 달리는 ‘공포의 삑삑이’ 훈련이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체력이 강화된 한국 선수들은 상대보다 더 많이 뛰는 단순한 축구로 유럽 강호들을 연파하며 4강에 올랐다.
윤덕여 감독도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상대는 한국보다 신체 조건과 기술이 뛰어나다”며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며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체력 강화 훈련에 중점을 뒀다. 선수들도 “체력이 없으면 뛸 수가 없다”며 “볼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이를 악물고 뛰었다.
‘히딩크호’와 ‘윤덕여호’는 강팀과의 최종 평가전을 통해 선수들의 자신감을 키웠다. ‘히딩크호’는 2002년 5월 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아트사커’ 프랑스와 치른 최종 평가전에서 놀라운 경기력을 펼쳐 보였다. 비록 2대 3으로 패했지만 태극전사들은 세계적인 강호와도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윤덕여호’는 지난달 31일 미국과의 최종 평가전에서 자신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월드컵을 두 번이나 제패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 미국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고 0대 0으로 비겼다. 미국은 한국의 강한 압박과 탄탄한 수비 조직력에 혀를 내둘렀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강호 포르투갈을 잡고 16강에 오른 ‘히딩크호’는 ‘빗장수비’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를 만났다. ‘히딩크호’의 승리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히딩크호’는 보기 좋게 이탈리아를 제압한 후 8강에서 스페인마저 무너뜨렸다. 불굴의 투혼으로 일군 기적이었다.
캐나다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놀라운 투혼으로 복병 스페인을 꺾고 16강에 오른 ‘윤덕여호’는 22일 오전 5시 몬트리올 올림픽스타디움에서 F조 1위 프랑스와 맞붙는다. FIFA 랭킹 3위인 프랑스는 이번 대회 우승 후보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약체 콜롬비아에 0대 2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윤덕여호’도 이변을 연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스페인전 직후 오타와 숙소에는 ‘아직 아니야. 16강에서 끝낼 건 아니잖아. 차분히 준비해 프랑스’라고 쓰인 A4용지가 붙었다.
‘윤덕여호’가 프랑스를 잡으면 8강전 상대는 FIFA 랭킹 1위이자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인 독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은 B조 조별리그 3경기에서 무려 15득점, 1실점의 압도적인 경기력을 펼쳐 보였다.
히딩크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올려놓은 후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덕여 감독도 아직 배가 고프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윤덕여號에서 히딩크號 향기가 난다… 험난한 조별리그 뚫고 16강 진출
입력 2015-06-20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