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를 아시나요? ‘어비’라고도 하고 ‘에비야’ ‘이비야’ ‘어비야’ 등 지역에 따라 달리 말하지요. ‘아이들에게 무서운 가상적인 존재나 물건’을 뜻하는 말인데, “자꾸 울면 에비 온다”처럼 말합니다. 또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무서운 것’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에비, 이건 만지면 안 돼”처럼 쓰지요.
‘에비’는 ‘이비야(耳鼻爺)’에서 연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귀(耳) 코(鼻) 사람(爺)으로 이뤄진 말로 ‘귀, 코를 베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인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를 왜군들의 전공 평가에 반영했다는데, 시신을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에 코나 귀를 베어 가서 그 수를 헤아렸다 합니다. 심지어 산 사람의 그것들을 잘라 가기도 했다니 그 무도(無道)함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 있는 ‘코무덤’ ‘귀무덤’이 증거하고 있지요. 게이넨이라는 승려가 전쟁 상황을 목격하고 쓴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 순사를 ‘에비’라 했다지요. 아픈 역사의 단면입니다.
세상에는 ‘사람’으로서 꼭 해야 하는 게 있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귀·코를 베어가는 사람 ‘에비’
입력 2015-06-20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