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집 낸 탈북인 출신 고려대생 이가연씨 “두고온 고향 그리워 밤새워 시를 썼어요”

입력 2015-06-22 02:20
북한이탈주민으로 최근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한 이가연씨는 “자유로운 남한에서 신앙인이요, 시인으로 살아가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며 “가슴에 맺힌 통일 이야기들을 시에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18세 소녀의 꿈은 시인. 열심히 공부해 꼭 꿈을 이루고 싶었다.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대학에 합격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입학은 엄두도 못 냈다. 소녀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 쌀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지만 흰 쌀밥 한 번 배불리 먹지 못했다. 대학도 못 가고 굶주림에 허덕이던 소녀는 희망의 끈을 놓은 채 세월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를 살아도 한 번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한 밥 한 끼로 배를 채우고 글도 써보고 싶었다. 꿈을 찾아 나선 길, 죽음의 그림자조차 그를 막지 못했다. 2010년 1월 두만강을 건넜다. 소녀의 나이 스물셋. 중국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11월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식당과 웨딩홀, 화장실 청소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큼은 풍요로웠다. 대학에 들어가 꼭 꿈을 이루겠다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초 예수님을 만나고부터는 꿈과 비전이 더욱 견고해졌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북한이탈주민 이가연(28)씨 이야기다.

최근 이씨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시집 ‘엄마를 기다리며 밥을 짓는다-꼭 한번이라도 가 봤으면’(시산맥사)을 출간했다. 지난해 9월에 낸 ‘밥이 그리운 저녁’에 이은 두 번째 시집이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이씨를 만났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찬양을 참 좋아합니다. 어쩜 가사가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운지요. 저도 그런 시들을 쓰고 싶었습니다. 고향이 그립고 외로워서 밤새워 시를 썼는데, 아침에 일어나 읽으면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시집에는 60여편의 시들이 들어 있다. “38선을 걷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나는 걷습니다/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당신을 빨리 만나기 위해/ 마음 끝에서/ 또 다른 마음을 찾아갑니다.”(시 ‘38선’ 중) 두렵고 힘든 탈출 과정을 떠올리며 썼지만 새로운 땅에서 이뤄낼 꿈과 희망이 잘 묻어난 시다.

“인천공항에서 처음 본 대한민국은 화려한 불빛과 아름다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나라였습니다. 꼭 꿈을 꾸는 것 같았지요. 북한에서 듣고 배운 남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는 탈북민들에겐 위로와 격려를, 통일을 준비하는 세대들에겐 화해와 평화 의식을 심어주는 시를 쓰겠습니다.”

이씨는 이 시집을 통일 관련 단체들에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통일을 위해 힘쓰는 이들이 고맙기 때문이다. 분단 70년인 올해 그는 소설쓰기에도 도전한다. 북한에서의 생활을 담은 중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2012년 대한문예신문사를 통해 등단한 그는 2013년 시 부문 통일부장관상을 받았고 지난해 한국평화인권문화상 시 부문 동상을 수상했다. 서울문학의 집, 국제PEN한국본부, 시산맥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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