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논리대로라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외국인 경영 전문가 중에서 골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근 갤러리에서 만난 한 대학 강사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국 미술계의 수장이라 불리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 문제로 미술계가 들끓고 있다. 지금까지 8개월째 공석이다. 그간 낭설만 난무하게 만들더니 그 결과는 ‘적격자 없음’이었다. 결정 과정에서 미술계 의견을 수렴(?)했다는 문체부의 해명도 납득이 안 가지만 이번에는 외국인도 관장 공모에 포함한다는 김종덕 문체부 장관의 발언에 미술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울분을 토로한다.
관장 공석 장기화로 대외 신인도가 추락하고 기획 및 예산 편성, 서울관의 새로운 출범과 명품 미술관 도약이라는 과제들을 수행하는 데 막대한 차질이 빚어질 건 불 보듯 뻔하다. 이 같은 사태에는 정부의 실책이 크지만 국립형 미술관의 제도 역시 한몫하였다. 우리나라 같이 국립미술관 관장을 정부가 공모해 선임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메트로폴리탄, 모마, 테이트 갤러리를 비롯하여 브리티시 뮤지엄, 스미스소니언 등은 국립이 아니라 법인으로 운영된다. 뮤지엄이 자체 이사회나 운영위원회를 통해 설립되고 위원들이 관장을 추천하고 임명하며 자문과 감시, 지원을 병행한다. 이런 시스템은 정부의 간섭을 차단함은 물론 뮤지엄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경영의 현실화를 지향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 안건은 국회에서 몇 년째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류 중이다. 법인화를 전제로 하여 직제가 편성된 서울관 직원은 모두가 1년 계약직이다. 관장 임기도 문제다. 재임명을 거쳐 길어야 4∼5년에 그치는 임기 제한으로 연속 업무가 불가능하다. 테이트 갤러리의 존 로덴스틴, 니콜라스 세로다가 각각 26년, 27년을 관장으로 일하면서 눈부신 실적을 보여준 예나 모마의 알프레드 바와 글랜 D 로리가 각각 14년, 20년간 관장 임무를 수행한 것은 대표적인 해외 사례다.
미술인들의 책임 역시 막중하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나라 공공 미술관 운영은 수십년이 넘은 구세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소통과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통해 자립도를 향상시키지 못하고 폐쇄된 성역처럼 운영해오면서 당대 미술계의 이슈를 제시하거나 예술인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중심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관장은 작가나 미술사가 등 미술인이면 아무나 가능하다는 희한한 발상을 한다.
전시의 질은 당대 시각예술의 이슈를 제시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미술관의 몇 개 위원회가 있지만 무늬만 존재한다. 전문가를 존중하지 않고 정부나 미술관 모두가 독자적인 행보만 고집하는 이중적 형국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단순히 미술관이기보다 한국문화의 상징이고 수십만 미술인들의 자존이다. 그러나 미국은 1만7000여개, 유럽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도합 1만개 이상의 뮤지엄을 보유하고 막대한 공공 지원을 받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국립미술관 1개관만을 보유한 우리나라의 상징적 현실을 읽지 못하고 ‘늑장인사’ 뒤에 외국인 관장을 언급한 김 장관의 발언은 단적으로 우리 미술관 정책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전문가는 있다. 부족하다면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장치를 하는 것이 진정한 정부의 역할이고 정책의 미학일 것이다.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기고-최병식] 외국인 국립현대미술관장?
입력 2015-06-20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