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한 달] 부친 이어 모친도… 메르스는 ‘임종’마저 막았다

입력 2015-06-19 02:21
80대 부부가 둘 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돼 보름 간격으로 숨졌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고 간호하다 감염된 아내가 뒤를 따랐지만 자식들은 격리되거나 감염 우려로 두 번 다 부모를 임종하지 못했다. 부모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조차 올리지 못하는 ‘메르스발 비극’에 주위에서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 격리병원인 충남대병원 음압병실에서 18일 오전 1시14분 82번 환자 A씨(83·여)가 운명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곁에는 가족들이 없었다. 아들 3명, 딸 1명 등 자식과 다른 가족들도 있었지만 병실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의료진으로부터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지만 집에서 애만 태우고 있다가 사망 소식을 접하고 오열했다.

A씨의 큰아들(59)은 “새벽에 병원으로부터 어머니가 숨졌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건강하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메르스에 감염돼 보름 사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고 말했다.

앞서 A씨의 남편(82)은 지난 3일 건양대병원에서 숨졌다. 천식과 세균성 폐렴 등 기저질환이 있던 남편은 숨진 다음 날 36번째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메르스 감염으로 부부가 숨진 것은 처음이다.

A씨는 지난 8일 확진 판정을 받아 충남대병원에 입원했다. 지난달 28∼30일 건양대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하다 감염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남편이 입원해 있던 병실에는 16번 환자가 있었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뜰 때 임종을 못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자택 격리된 상태여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병원으로부터 사망 소식을 듣고 발만 동동 굴렀고 마지막 길인 화장장에도 가지 못했다. 아버지와 접촉하지 않아 격리 대상에서 제외된 큰아들만이 외롭게 화장장을 지켰다.

자식들은 지난 14일 잠복기가 지나 격리에서 풀려났지만 어머니가 격리병실에 있어 이번에도 병실을 지킬 수 없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잘 지켜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A씨 부부의 거주지 관할인 대전 유성구보건소 관계자는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다 남편과 함께 메르스에 감염돼 아내마저 숨지는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느냐”며 “부모를 임종하지 못한 가족들은 모두 넋이 빠져 있다”고 전했다.

A씨 부부는 사망 후 곧장 화장됐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전염병에 감염된 사망자의 시신은 24시간 이내에 신속하게 화장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합동장례를 치를 생각이지만 메르스 사태가 가라앉지 않아 일정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멀쩡하던 부모가 보름 사이 잇따라 사망했데도 방역 관리를 잘못한 것에 대해 사과는 하지 않고 서둘러 화장만 하라고 한 것에 대해 서운해했다. 보건 당국은 메르스 관련 사망자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대전=정재학 기자 jhje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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