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명이 사망하고, 22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사라예보는 폭탄과 총알 속에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빈약한 구호품 외에는 1년째 거의 식량이 바닥나 시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상점들은 모두 약탈당해 텅 비었고, 깨지지 않은 유리창이 없었다. 하지만 이 황폐한 죽음의 도시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있었다.
한 노부부가 폭격을 맞았지만 아직 부서지지 않은 건물 구석에서 공습 때 거리에서 죽어가던 개와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데리고 와서 보살피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지나 상태가 좋아지면 내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함께 지내고 있었다.
“어쩌다 운 좋게 조금 찾아낸 식량을 개와 고양이에게 나눠 먹였어. 이 고양이 녀석은 프랑스 구호품인 가루우유를 좋아한다”고 부부는 웃으며 말했다. 개가 강아지를 일곱 마리나 낳았는데, 이웃들이 자기들도 부족한 음식들을 가져다 먹여 다섯 마리는 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 곁에 무언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이 녀석들을 돌보는지도 모르지. 새들에게도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주지. 그 녀석들은 평화로웠던 때를 기억하게 해주거든. 이해하겠나.”
노부부를 인터뷰한 기자는 “당시 악몽 같은 시기에도, 궁핍에 허덕이는 상황에도 아직 한 가지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랑’이었다.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스스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베풀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인간의 사랑은 배고픔과 두려움보다 더 강하다”고 썼다.
몇 년 전, 나는 이 이야기를 대안심리치료 교과서를 쓰면서 동물요법에 인용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이야기가 저녁 뉴스 시간에 메르스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의 사투를 보면서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가족들과 생이별하다시피 하면서 탈진 속에서도 오직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간호사 한 분이 이렇게 말할 때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희는 의료인이고요, 여기서 치료하지 않으면 국민건강을 돌볼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일찍이 하버드대학 조시아 로이스 교수가 ‘충절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우리의 삶이 가치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를 넘어서는 대의(大義)가 필요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로이스 교수는 대의를 인간 본연의 욕구로 보았다. 대의는 국가, 신앙과 같은 큰 것일 수도 있으며 가족, 애완동물과 같은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대의에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를 로이스 교수는 개인주의 반대 개념으로 ‘충절(loyalty)’이라고 불렸다. 또한 로이스 교수는 “우리는 내적인 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외적인 빛을 보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말했는데, 최근 심리학의 신조어 외성(外省·outrospection)을 이미 언급한 셈이다.
소크라테스부터 지금껏 내성(內省·introspection)만 너무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이 개인주의가 사람다운 삶을 가져다준 일은 거의 없다. 이제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내성과 외성의 균형이 필요하다. ‘외성’이란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 타인들의 삶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으로 내성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를 ‘자아초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은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의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보다 더 위에 자아초월 단계가 있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고 했다.
한 선생님이 책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학생들이 책값을 묻자, “여기에 책값이 나온다”고 하면서 스티븐 포스터 교수의 책 첫 줄을 읽어주었다. “만약 영원토록 나와 함께할 단어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기브(give)’를 고를 것이다.” 김종환(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
[김종환 칼럼] 사라예보의 강아지 이야기
입력 2015-06-20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