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 당국이 메르스의 국내 유행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메르스를 처음 접한다는 듯 허둥대고 있지만 이미 2년 전 메르스 등 해외 전염병에 대비한 중장기 계획을 세웠었다. 다만 계획은 그저 관료의 ‘책상머리’에 머물렀고 현장으로 녹아들지 않았다. 화려한 ‘말잔치’에 지나지 않았다.
보건 당국이 2013년 8월 발표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2013∼2017)’에는 메르스가 언급돼 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국내외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 방향을 정리해놨다.
당시 보건 당국은 신종 감염병이 국내로 유입될 경우 공중보건에 위기가 초래된다고 우려했다. 해외교역·인적교류 확대로 해외유입 감염병 발생이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조류인플루엔자, 사스(SARS), 돼지인플루엔자, 메르스 등을 열거하면서 “신종 감염병 발생 및 유입 탐지 역량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속하고 정확한 감시·진단·조사를 위한 초동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과적인 예방·방역을 위해 보건 당국, 지방자치단체, 각급 병원 등의 유기적인 협조 체계가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1번, 14번, 16번 등 ‘슈퍼 전파자’들은 증상이 나타난 뒤 확진·격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들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동안 보건 당국의 감시체계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1번 환자의 경우 일선 병원에서 메르스가 의심된다며 보건 당국에 검사를 요구했지만 보건 당국은 되레 “메르스 아니면 병원에서 책임져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보건 당국의 초동 대처에 미숙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대 전파자’인 14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과 보건 당국이 공조하지 못하는 사이 82명을 감염시켰다.
또한 2013년 기본계획에는 ‘정확한 정보 전달 및 커뮤니케이션으로 안정적인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정보 공개’였다. 보건 당국은 사태 초기 병원명 공개에 지극히 미온적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병원명이 떠돌고 각종 괴담이 양산되는데도 침묵했다. 의료인들에게까지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전문가들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한 보건 전문가는 18일 “탁상행정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전염병 대응을 위해서는 복지부가 스스로 마련한 기본계획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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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9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