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첫 환자 발견으로 시작된 국내 메르스 사태가 곧 한 달을 맞는다. 감염병의 특성상 제한적 범위 내에서의 확산은 인력(人力)으로 막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메르스 사태는 바이러스의 힘만으로 확산된 게 아니다. 보건 당국은 처음부터 메르스를 과소평가했다. 고비마다 내린 결정은 한 발씩 늦었고 적절치도 않았다.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한 보건 당국은 곧 힘의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청와대, 국무조정실 등 컨트롤타워는 전혀 기능을 못했다. 한 달이 채 안돼 23명의 사망자를 내고 확진자가 165명까지 불어난 것은 정부 자체가 실패한 결과다.
잘 모르면서…메르스 과소평가
첫 실수는 메르스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보건 당국은 첫 환자가 나왔을 때 메르스가 ‘밀접한 접촉’에 의해서만 전염된다고 강조했다. 2m 내에서 1시간 이상 대화해야 전염될 수 있다는 ‘기준’도 곁들였다. 첫 환자로 인한 격리 대상도 64명으로 한정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같은 병실뿐 아니라 같은 병동에서도 환자가 나왔다. 당국이 심각성을 느낀 건 존재조차 몰랐던 3번 환자(76·사망)의 아들(44·10번 환자)이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다. 지난달 28일 평택성모병원을 중심으로 부랴부랴 전수 재조사를 하자 당국을 조롱이라도 하듯 환자가 잇따라 나왔다.
보건 당국은 삼성서울병원에서 환자가 쏟아져 나오기 전까지도 메르스의 전염력을 얕잡아봤다. 지난 4일 30분∼1시간 병문안했던 사람도 감염자로 확인되자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상당히 특이한 양상’이라고 했다.
건강한 사람은 감염돼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옳지 않은 것으로 판명 났다. 평소 질병이 없거나 비교적 간단한 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도 사망했다. 30대 의사는 며칠 만에 상태가 악화됐다.
원칙 없는 ‘비공개 원칙’ 화 키워
사태 초반 보건 당국은 메르스 감염이 일어난 병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과도한 불안과 공포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해당 병원과 지역의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환자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병원명 비공개는 오히려 더 큰 불안감을 조성했다. 보건 당국은 결국 지난 5일 평택성모병원을 공개한 데 이어 7일 환자가 거쳐 간 모든 병원을 공개했다. 병원 공개 논란이 세게 불거졌던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6일 사이 증상이 발현된 환자는 50명이 넘는다. 병원 공개가 빨랐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증상 발현 즉시 스스로 신고하는 등 추가 확산을 막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수’ 이상의 ‘잘못’ 있었다
보건 당국이 메르스를 과소평가한 것이나 병원 이름을 비공개한 것은 ‘판단’의 문제다. 당국의 철저한 대응이 아쉽지만 시각에 따라 실수로 여겨질 수도 있다. 문제는 메르스 사태 확산이 오로지 ‘판단 미스’에 의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정부 전체의 무능력과 안이함이 사태를 이 지경까지 오게 했다.
가장 집중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7일까지 정부의 대처다. 메르스 사태의 심각성이 이미 수면 위에 떠오른 시기다. 정부는 관리대책본부를 복지부 장관 중심으로 격상했다. 정부 내 다른 대책기구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관리에서 처참히 실패했다. 보건 당국이 병원에 메르스 의심환자가 있음을 안 것은 지난달 29일이다. 지난 1일에는 삼성서울병원 의사가 감염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부터 병원 이름이 공개된 지난 7일까지 보건 당국이 이 병원과 관련해 취한 조치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국은 14번 환자와의 밀접 접촉자를 가리고 명단을 만드는 일을 병원에 맡겼다. 보호자와 병문안객이 명단에 들어 있는지 여부는 점검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일주일 넘게 병원을 방치해둔 것이다. 그 사이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냈고, 이는 계속 진행 중이다.
정부가 실패했다
보건 당국이 삼성서울병원 상황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은 힘의 균형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 복지부를 중심으로 한 관리대책본부는 이 병원에 대거 인력을 파견해 역학조사를 진행할 만큼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평택성모병원 상황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다른 병원에서도 환자가 나오고 있었다. 중앙정부의 지원과 개입은 이때 이뤄졌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의 자원을 배분하고 조정할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았다. 청와대나 국무조정실이 즉각 삼성서울병원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행동에 옮겼어야 했다. 메르스 위험에 관한 각 부처의 메시지도 하나로 통일해야 했다. 그러나 엄청난 위기 상황을 앞에 두고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실수가 아닌 무능력과 의지박약에 의해 사태가 커졌다. 결국 방역의 주도권을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한편으로 대형 민간병원에 대한 국가의 한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드러났다. 보건 당국은 삼성서울병원과의 관계에서 이상할 정도로 저자세를 취했다. 병원 의사의 감염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고 자료 제출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엄청난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가 대형 민간병원에 큰 소리 한번 못 내는 비정상적 의료 체계를 사태 확산의 구조적 원인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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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9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