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한 달] 살아나던 소비 불씨 다시 꺼지고 국가 신용등급도 ‘부정적’ 경고등

입력 2015-06-19 02:27

겨우 살아나던 내수 회복의 불씨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발생 한 달 만에 사그라지고 있다. 외국인의 입국이 눈에 띄게 줄면서 여행·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데다 이 여파가 내수 전체로 퍼지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8일 메르스 사태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올 2분기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의 기저효과로 높은 소비증가율이 기대되던 때였다. 하지만 메르스 확산 공포로 소비가 얼어붙어 증가율이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금융투자 곽현수 연구원은 18일 “세월호 참사에 비유되지만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 파급력은 메르스가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투자증권 나은채 연구원도 “세월호 사태가 심리적 요인이 컸다면 이번 이슈는 물리적인 외부활동 자제로 인한 소비 둔화로 이어져 내수산업에 단기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메르스발 경제타격은 이미 가시화됐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6월 1∼16일 우리나라 여행을 취소한 외국인은 중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무려 11만7810명에 이르고 있다. 외국인 여행객 급감은 항공, 숙박업계에 연쇄적인 타격을 안기면서 내수 전반에 침체의 악몽이 드리워질 조짐이다.

실제 메르스 여파로 한 달 새 주요 내수기업의 2분기 실적 전망치가 잇따라 하향 조정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 전망치를 제시한 국내 상장사 224곳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지난달 20일보다 0.36% 하락했다. 특히 통신·금융·제약·의료장비·음식료·생활용품·의류·유통 등 내수기업 101곳 중 45개사의 영업이익 전망치가 한 달 전보다 낮아졌다.

메르스 사태는 전반적인 투자심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수혜주로 고공 행진하던 화장품 업종 주가는 한 달 새 시가총액 중 3조4000억원, 백화점 업종 시총은 2조3000억원이 사라졌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여름휴가 대목도 사라질 판이다. 산림청이 올여름 성수기(7월 15일∼8월 24일)에 쓸 전국 38개 국영 자연휴양림에 대해 인터넷 예약을 받은 결과 14만214명이 신청해 지난해(17만9468명)보다 4만여명이나 줄었다.

무디스의 경고로 메르스가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끌어내릴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 4월 한국 신용등급을 ‘Aa3’로 유지하면서 향후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높였다. 그러나 두 달 만에 부정적 요인이 돌출했다. 무디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경기 부양책도 신용도에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조치 같은 느슨한 통화정책이 가계부채를 더욱 팽창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디스는 한국이 이번 사태에 대응할 여력은 크지만, 미약한 내수와 수출 둔화 때문에 본래의 성장세로 돌아가기는 더욱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메르스의 경제 영향에 대해 논의했다. 주형환 기재부 1차관은 “메르스 사태 조기 종식을 위해 전폭적으로 예산 지원을 하는 한편 필요시 추가 경기 보완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세종=이성규 기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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