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이 사는 길, 반 한국사람 되라

입력 2015-06-19 02:48
니퍼트(두산)
밴헤켄(넥센)
테임즈(NC)
블랙(kt)
지난 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SK 와이번스와 kt 위즈의 경기. kt의 댄 블랙이 관중석 쪽으로 다가갔다. 이날 한국 무대에서 데뷔전을 가진 블랙은 두 여성 팬에게 자신의 야구방망이 두 자루를 건넸다. ‘댄 블랙’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적갈색 단풍나무 배트를 받아든 팬들의 얼굴엔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했다.

이후 블랙은 12경기에 나와 54타수 21안타를 치면서 타율 0.396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야구 관계자들은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한국형 용병’으로 거듭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물론 블랙의 성공을 이야기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조범현 kt 감독은 “30경기는 봐야한다”면서 “응원 문화도, 한국 선수들의 스타일도 달라 낯설 것이다. 초반에 잘 하다가 페이스가 떨어지는 선수도 있고 슬로 스타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성적만 보면 블랙은 합격점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팬 서비스 정신까지 좋아 벌써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 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면서 팀 분위기도 끌어올렸다. 구단 관계자는 “4번을 확실하게 맡아 주니 앞, 뒤 타순의 선수들도 부담 없이 타격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 “무엇보다 성격이 밝아서 선수들과 쉽게 융화됐다”고 했다.

넥센 히어로즈의 에이스 앤디 밴헤켄과 두산 베어스의 더스틴 니퍼트, NC 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도 한국 프로야구에 안착한, 가장 성공한 외국인 선수로 꼽히고 있다.

입단 초반 성적이 좋지 못했던 밴헤켄은 성실함을 바탕으로 자리를 잡았다. 2012년 넥센에 입단해 시범경기에 나섰을 때만 해도 밴헤켄은 193㎝의 큰 키에서 내리 꽂는 직구의 구속이 133∼135㎞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시즌에 접어들자 달라졌다. 첫 시즌을 11승 9패로 끝내더니 이듬해 재계약을 해 12승 10패를 올렸다. 지난해에는 20승을 올리며 팀을 한국 시리즈로 이끌었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올 시즌에도 14경기에 나와 7승 3패 평균자책점 4.30을 기록 중이다.

두산의 니퍼트도 2011년부터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부상으로 주춤한 상황이지만 에이스 자리는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 방출 통보를 받은 LG 트윈스 잭 한나한도 한국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18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한나한은 올 시즌 100만 달러의 몸값을 받고 LG 유니폼을 입었지만 개막 전 부상으로 한동안 경기에 뛰지 못했다. 50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한나한은 3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7에 4홈런 22타점 17득점을 올렸지만 3루수 수비를 소화하지 못해 짐을 싸야 했다. 비록 한국 무대는 떠나지만 한국 팬들과 선수들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베테랑 내야수다운 품격을 선보였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