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 꿈★을 이루다… 국민에 메르스 ‘희망 백신’ 월드컵 16강 진출

입력 2015-06-19 02:44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18일 캐나다 오타와 랜스다운 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극적인 2대 1 역전승을 거두고 사상 첫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룬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1-1로 팽팽하게 맞서 있던 후반 32분. 측면 수비수 김수연(26·KSPO)이 오른쪽 측면에서 높은 크로스를 올렸다. 의도치 않았던 ‘슈터링’(슈팅+센터링)은 상대 골키퍼 키를 넘겨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청량제가 된 한 방이었다. 한국 여자축구는 이 골로 월드컵 첫 승리를 따내면서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국민들의 무관심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눈물로 이룬 성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FIFA 랭킹 18위)은 18일(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스페인(14위)과의 경기에서 짜릿한 2대 1 역전승을 거뒀다. 여자축구 대표팀의 이번 승리는 2003년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후 12년 만이자 본선 6경기 만이다. 16강은 월드컵 본선 무대 두 번째 만에 이뤄낸 쾌거다. 1승1무1패가 된 한국은 조 2위로 16강에 올라 22일 F조 1위 프랑스(3위)와 8강 진출을 다툰다.

한국은 2003 미국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에 0대 3, 프랑스에 0대 1, 노르웨이에 1대 7로 참패했다. 12년 뒤 두 번째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한국은 그야말로 ‘아시아의 호랑이’다운 위용을 뽐내고 있다.

한국 여자축구가 많이 발전했지만 세계 강호들에 밀리는 게 현실이었다. ‘윤덕여호’는 눈물이 쏙 빠지는 지옥훈련과 투혼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윤 감독은 “세계무대에서 강호들에 밀리지 않기 위해선 강한 체력이 필수”라며 체력 훈련을 중점적으로 실시했다. 지난달 8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 입소한 태극낭자들은 지옥훈련을 했다. 힘들다고 불평하거나 꾀를 부린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독기를 품었다.

선수들이 독기를 품은 이유는 설움 때문이었다. 여자 대표팀은 그동안 보이지 않는 벽과 싸워 왔다. 언제나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받는 남자 대표팀 선수들을 보면 부럽고 서러워 눈물이 났다. 최근까지만 해도 남녀 대표팀이 국제대회를 앞두고 파주 NFC에 입소하면 먼저 남자 대표팀에 방 배정을 했다. 여자 대표팀은 다른 숙소를 찾아야 했다.

여자 대표팀은 남자 대표팀과 달리 A매치 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FIFA는 여자 A매치 스케줄을 연간 단위 일정에 포함시켜 왔지만 한국 선수들에게 A매치는 ‘그림의 떡’이었다. 여자축구 관계자들이 수차례 대한축구협회에 A매치의 필요성을 역설한 결과 대표팀은 지난 4월 무려 17년 만에 국내에서 러시아와 두 차례 A매치를 치를 수 있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자란 한국 여자축구는 캐나다월드컵에서 보란 듯이 기적을 일궈냈다. 남자 대표팀이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기에 이번 쾌거는 더욱 돋보인다. 태극낭자들의 유쾌한 반란은 이제 시작이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