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민태원] ‘病亂 징비록’을 준비하자

입력 2015-06-19 00:20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전시 총사령관격인 영의정 겸 도체찰사였던 류성룡이 7년간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후 집필한 전란(戰亂)의 기록이다. 전란의 현장에서 백척간두 조선을 이끌었던 그는 왜란의 처음과 끝,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뼈아픈 역사의 과오를 꾸짖고(懲) 미래의 위기에 대비(毖)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후세에 전하고자 피눈물로 쓴 반성문이 바로 징비록이다. 최근 TV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

40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내려와 여기 ‘징비’해야 할 또 다른 전란이 있다. ‘역병(疫病)과의 전쟁’이다. 정확히 말하면 ‘병란(病亂)’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20일 국내 첫 메르스 환자 발생 후 전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멀리 중동 사막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인 양 방심하다 한순간에 일격을 당했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 메르스 발병국이라는 오명을 썼다.

지금처럼 메르스 전선이 확대된 데는 발병 초기 보건 당국의 상황 오판 탓이 크다. 평택성모병원에서 첫 환자가 나왔을 때 초동 방역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방역 대상자를 감염자와 2m 내 1시간 이상 밀접 접촉자로 한정하다 보니 너무나 많은 감염 의심자를 놓쳤다. 이후 환자·병원 정보공개가 늦어지면서 방역망은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방역 컨트롤타워는 한참 뒤에야 가동됐다. 그러는 사이 바이러스는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오랜 관행이었던 우리만의 병원문화도 감염 확산을 부채질했다. 병란이 터진 지 한 달여가 다 돼 가지만 전세를 역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보건 당국은 ‘병원 안 감염이고 지역사회 전파는 없다’는 말을 되뇌지만 국민들의 불안을 씻어주지 못하고 있다.

임진왜란도 조선 조정의 오판으로 시작됐다. 조선은 전쟁 발발 전 적정을 살피기 위해 왜에 통신사를 보냈다. 하지만 동서 붕당으로 인한 통신사의 내분은 왜의 침략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다. 전쟁에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조선은 속절없이 당했다. 잘못된 판단의 결과는 참혹했다. 많은 국토가 왜에 유린당했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전란이든 병란이든 소용돌이로 인한 혼란은 별반 차이가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군사적 전쟁은 눈에 보이는 적과 싸움이어서 초반에 무너져도 신속히 전열을 재정비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처럼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움은 다르다. 바이러스는 전파 속도가 빠르고 유전자 변이도 잦다. 언제 어떻게 모습을 바꿔 인간에게 치명상을 입힐지 알 수 없다. 현대의학이 끊임없이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여 왔지만 쉽게 제압하지 못한 이유다. 초창기 방역의 둑이 터지면 다시 막기가 쉽지 않다.

최근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들이 끊임없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사스와 신종플루, 에볼라 등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마다 완벽한 대응체계 구축을 떠들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이런 말을 남겼다. “지난 난중(亂中)의 일을 생각하면 황송스러움과 부끄러움에 몸 둘 곳을 알지 못해 왔다. 그래서 한가로운 가운데 듣고 본 바를 대략 서술했으니….”

메르스 사태는 머지않아 종식되면 보건 당국과 의료계는 류성룡이 했던 것처럼 통렬히 반성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감염병 대응체계를 새로 짜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메르스 징비록’을 준비해야 한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