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두려워서 교회에 못 나오겠다는 이들이 있다. 교회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 괴질이 유행한 시점부터 주일예배 출석률이 뚝 떨어졌다. 특히 유아부와 유치부 아이들의 결석률이 높아졌다. 가뜩이나 주일성수 의식이 퇴색되고 있는 마당에 메르스 공포는 주일성수에 또 하나의 악재가 되고 있다. 먹고사는 일 자체가 빠듯해서, 아니면 생활이 풍족해지다 보니 주일예배에 빠지는 교인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온전한 주일성수를 진정한 신앙의 척도로 삼았던 풍조는 희미한 옛이야기가 되고 있다. 주일성수 의식의 약화는 한국교회 쇠락의 주원인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십계명의 제4계명인 안식일은 창조의 질서와 연결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1∼2) 엿새 동안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일곱째 날 쉬셨다. 힘이 부쳐 피곤해서 쉬신 것이 아니라 심혈을 기울여 만든 최고의 작품을 좋다고 감상하시기 위해 쉬셨다. 그래서 몰트만은 인간창조가 아닌 안식일을 창조의 완성이자 면류관으로 보았다.
세상만물에는 일정한 규칙이 리듬처럼 반복된다. 날숨→들숨, 아침→점심→저녁,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일정한 순환이 계속된다. 엿새 노동→하루 안식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창조질서이므로 주기적인 안식을 누릴 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다.
창세기는 쉼을 복되고 거룩한 것으로 규정한다. 일주일 내내 죽어라 일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십계명 중에 하나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주신 유일한 계명이 안식일이다. 하나님도 안식하셨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말할 것이 없다.
안식일 계명에는 인간존중과 만민평등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 출애굽의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던 파라오나 파라오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구실을 했던 애굽의 우상잡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스로 안식을 취하셨을 뿐 아니라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짐승들까지도 안식할 것을 요구하신다(출 20:10, 신 5:14).
자신이 만든 피라미드처럼 파라오는 정점에 서 있는 본인 한 사람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저변으로 내려올수록 대규모의 값싼 노예 노동력을 잠시도 쉬지 못하도록 돌리고 또 돌리는 노동착취의 화신이다. 월터 브루그만이 주장한 것처럼 안식일은 더 많은 것을 소비하기 위해 끝없는 생산과 노동을 강요하는 파라오의 무한질주에 대한 저항이다.
하나님은 안식의 혜택을 노예나 고아와 과부, 외국인 등등의 사회적 약자들과 심지어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환경에까지 두루 미치도록 배려하신다. 시장경제가 판을 치는 파라오 시스템에서는 이웃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다 싸워 이겨야 할 경쟁자들이요, 원수들일 뿐이다. 고용자나 피고용자나, 인간이나 대자연이나 다 함께 안식할 때 비로소 대등한 이웃이 될 수 있다.
2000년 동안 영토와 주권 없이 떠돌아다니던 유대인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중에 하나는 안식일 제도의 세심한 준수였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들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도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두 번째로 중요하다. 제4계명에 깃든 근본정신을 되살려내는 것이 보다 더 절박해졌다.
김흥규 목사 (내리교회)
[시온의 소리-김흥규] 제4계명의 재발견
입력 2015-06-19 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