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읍교회] ‘감리교 생활’ 속 면천교회 교인들

입력 2015-06-20 00:41
조선 중종 때 한양 사가의 열두 살 노비 붕이(朋伊)가 와병 중인 아버지께 손가락을 잘라 약에 피를 섞어 드리니 병이 나았다고 전해진다. 역시 이 무렵 숙미라는 이도 어머니께 다리 살을 베어 병을 고쳐 드렸다. 전라도 용안현의 이보라는 사람도 손가락을 잘라 약을 만들어 아버지 병을 고쳤다.

1961년 8월 1일자 ‘감리교 생활’에 실린 내용도 이와 유사하다. 면천교회 교인들 얘기다.

‘면천교회 이내희(당시 21세)양은 절명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고자 왼손 약지를 깨물어 어머니를 소생시켰다. 이양은 서산군 운산면 팔중리에 사는 면천교회 교인으로 어머니 이원희(당시 58세)씨가 간장 질환으로 눕게 되자 그런 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같은 교회 이장렬 의사는 이양과 그의 어머니 병을 무료로 치료해주어 더욱 동리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또 하나의 면천교회 사례. 53년에 있었던 일을 같은 날짜 ‘감리교 생활’이 뒤늦게 다룬 것이다.

‘금년에 우리 감리회에서 교역자 보건주일을 지키게 된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호서지방 면천교회 김옥희 권사의 부군 오두섭씨는 외과의사로 20여년을 종사하여 교역자에게는 교파별 구분 없이 무료로 봉사하는 일을 계획하였다. 그 자신은 교회 직분을 갖지 않았으나 교역자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유일한 자기의 직분인 줄 알고 행하고 있다.’

130년 한국교회 역사는 반세기 전 일조차 ‘옛날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젠 한국 교회도 사실(史實)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산집회의 기적을 기록하지 않으면 누가 알 것인가. 전정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