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거울 속의 나

입력 2015-06-19 00:11

언젠가 박물관에서 구리거울을 본 적이 있다. 푸른 녹이 슬어 있는 흐릿한 거울을 보면서 저런 물건에 얼굴을 비춰보려면 날마다 모래로, 잿물로 힘들여 닦아야 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 옛날 거울은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었다고 하니, 얼굴이 잘 비쳐 보이지 않는 거울이나마 지니고 있는 사람도 드물었을 것이다. 그 시절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얼굴을 잘 모르고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따금 개울가나 샘터로 걸어가 잔잔한 물 위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며 물 위에 비친 흔들리는 모습을 자기 자신으로 알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 얼굴보다는 남의 얼굴을 더 열심히 보았을 것이고, 남의 얼굴에 더 익숙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느 곳에 사는 누구인지 기억하려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알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얼굴뿐 아니라 몸 전체를 비춰 볼 수 있는 거울과 유리창이 즐비한 시대다. 그럼에도 자기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볼 수 있는 것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일 뿐이다.

게다가 거울은 그다지 믿을 만한 물건이 아니다. 때로 사물이 실제 서 있는 자리에서보다 더 가깝거나 멀게 보이기도 하고, 특정한 자리에 있는 사물은 아예 보이지 않기도 한다. 날마다 거울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어쩌면 자신의 어떤 모습은 평생 동안 결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얼굴이나 목소리나 이름 같은 건 나보다는 오히려 남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나보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부르니까. 거울로 비춰 봐도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은 어쩌면 나를 마주하는 다른 이들의 얼굴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날마다 만나는 그들의 시선과 표정, 건네는 말 속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고 경험하게 되니까.

그래서 아무도 홀로 훌륭해질 수 없고 그렇게 된다 해도 그런 훌륭함은 아무 소용이 없다.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