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과거로 돌리는 美·러 무기 경쟁

입력 2015-06-18 03:20

갈수록 더해가는 서방과 러시아 간 긴장이 냉전시기에 버금가는 무기 경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기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하는 무기를 배치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하며 날을 세우고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16일(이하 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올해 안에 40기 이상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추가 배치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무력위협’이라며 핵 위협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옌스 슈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만난 뒤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의 계획은 파괴적이고 위험하다”면서 “이런 상황이 우리가 군사적인 대응 태세를 증강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역시 “미국과 러시아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합의했지만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면서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모스크바 인근 쿠빈카에서 열린 국제군사기술포럼 ‘군-2015’ 개막식에서 ICBM 추가 배치 계획을 밝히며 “신형 미사일은 가장 개량된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으로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울리 니니스토 핀란드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는 “만일 어떤 국가가 러시아 안보를 위협하면 러시아는 그 나라 영토를 향해 첨단 공격용 무기를 조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나토가 러시아 국경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나토가 동유럽 국가들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푸틴 대통령의 ICBM 추가 배치 발표는 서방이 발트해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벌이는 동시에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해 무기를 배치하겠다고 밝힌 데 뒤이은 것이어서 양측이 번갈아가며 ‘도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데보러 리 제임스 공군장관은 전날 유럽에 제5세대 첨단 전투기 F-22 랩터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F-22 랩터는 최고 속도 마하 2.5에 레이더 추적을 피할 수 있는 뛰어난 스텔스 기능, 기관포와 공대공 미사일, 유도폭탄 등 파괴력 높은 폭탄을 장착했다. 13일에는 미국이 발트해 연안 3국과 일부 동유럽 국가에 3000∼5000명 규모의 여단급 병력용 탱크와 보병전투차량 등 중화기를 배치할 계획을 수립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러시아는 청년세대에 군사적 애국심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2017년 개장을 앞둔 ‘군사 디즈니랜드’로 불리는 애국공원 일부를 미리 공개했다. 200억 루블(약 4100억원)을 쏟아 부은 애국공원에서는 탱크를 타고 총을 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푸틴 대통령과 스탈린 등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품이 판매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NYT는 지난해 러시아 국방예산이 전년 대비 32% 증액됐다고 전하면서 “크렘린궁의 의욕이 지갑 사정을 능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일갈했다.

한편 EU의 28개 회원국 대사들은 17일 회의를 열어 7월 말 시한인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내년 1월 말까지 6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고 EU 집행위원회 소식통이 전했다. EU는 지난해 7월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우크라이나에서 미사일에 피격돼 추락하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가해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