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정상화 모색] 韓, 원칙론 vs 日, 우경화… 외면하고 달렸다

입력 2015-06-18 02:38

박근혜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였다. 박근혜정부는 위안부 및 독도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이전 이명박정부의 스탠스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역시 일본 전체의 우경화를 진두지휘하며 전방위로 한국을 압박했다.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등 과거사 문제와 검정 교과서를 통한 역사왜곡 및 독도 도발 시도는 끊임없이 양국 간 파열음을 냈다.

2011년 12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일본 교토에서 열린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작정한 듯 위안부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양국이 진정한 파트너가 되기 위해선 걸림돌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몰아붙였다. 반면 노다 총리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피해갔다. 그리고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 철거를 요구했고, 한·일 정상은 정면충돌했다. 이 회담은 지금까지 마지막 한·일 정상회담으로 기록돼 있다.

위안부 문제로 시작된 양국 갈등은 이내 독도 문제로 옮겨 붙었다.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고자 했던 일본은 극단적으로 한국을 자극했다. 일본 정부의 해설서에 따라 초·중·고교 교과서에 독도를 고유 영토로 표기하는 경우가 대폭 증가했다. 2012년 1월에는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이 국회 연설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해 8월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독도 갈등이 폭발했다. 일본 노다 총리는 주일 한국대사관에 친서를 보내 항의했다. 또 일본 정부가 ICJ 제소 움직임을 본격화해 우리 정부의 거센 반발을 샀다.

2012년 아베 총리가 취임한 이후 양국 간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아베 총리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는 발언으로 왜곡된 역사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해 근간을 훼손하려 하는가 하면,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철저히 일본 우익의 입장을 대변했다. 아베 내각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2005년 제정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독도를 이르는 명칭)의 날’ 행사에 정부 대표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2013년 2월 취임한 박 대통령 역시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양국 간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밝히면서 양국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색국면을 이어갔다. 지난 4월에는 일본이 교과서에 이어 2015년판 ‘외교청서’(외교백서 격)를 통해 다시 독도 도발을 가해왔다. 외교청서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 독도는 명백한 일본 고유 영토라고 적시했다.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해결된 문제’라며 “한국이 대응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 문제를 정치·외교 문제화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최근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도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지옥도’라 불렸던 하시마 탄광 등 조선인을 강제 징용했던 7곳도 포함돼 있어서다. 우리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국은 최근 두 차례 양자협상을 벌인 상태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