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선의 법칙] 어느날 이복동생이 익사체로 발견됐다…

입력 2015-06-19 02:04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상복 많은 작가 편혜영(43·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사진)의 신작 장편. ‘악몽의 일상화’ ‘일상의 악몽화’로 요약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이번 신작에도 관통한다. 다만 소름끼치는 구더기, 시체의 악취 등 엽기적 잔혹 동화를 연상시키던 요소를 배치했던 전작들에 비하면 리얼리티가 강해졌다.

그러나 누군가를 자살방화, 혹은 투신자살로 몰고 가는 다단계와 사채업자 등 문제적 현실을 무대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잔혹성이 묻어나는 리얼리티다. 소설에는 몇 개의 점 같은 실패한 인물들, 그것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야기 전개를 통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고교교사 신기정의 이복 여동생 신하정이 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엄마 몰래 동생 주검을 수습한 신기정은 그에게 정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부채감으로 죽음의 사연을 추적한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동생이 애타게 전화번호를 눌렀던 윤세오를 찾게 된다.

윤세오는 엄마 없이 아버지와 산다. 재개발 상가에서 공구가게를 하던 아버지는 가스폭발사고로 죽는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된다고 말해주고, 윤세오는 사채업자 이수호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이제 윤세오의 삶은 복수를 위해 연명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은 다단계에 빠진 딸에게 마련해준 오백만원에서 비롯됐다.

신기정이 죽은 동생의 핸드폰에 남은 전화번호 주인을 추적하며 만나게 되는 이들은 모두 다단계와 관련 있는 청춘들이다. 자신이 살아남고자 우정도, 한때의 사랑도 끌어들인다. “그곳에서 독립적인 인간은 없었다. 위로 아래로, 사방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많이 연결될수록 독립성을 인정받았다. 연결된 사람은 서로에게 밑천이 됐다.”(221쪽)

사채업자는 어떤가. “인간이 인간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하지만… . 짐승한테는 괜찮아.”(94∼95쪽)

윤세오는 결국 이수호에게 복수하지 못한다. 상상으로 그의 집 가스 밸브를 열 뿐이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선의 법칙’은 이중적으로 읽힌다. 서로가 서로를 밑천 삼는 먹이사슬로서의 선(線), 그러나 결국 그 선에서 벗어남으로써 선(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윤세오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만난 슈퍼 주인 김우술과 직원 신재형은 ‘선의를 가진 인간들의 세계’의 현실적 사례다. 그들을 보며 윤세오는 꿈꾼다. ‘서로에게 덫이 되거나 먹이사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일하고 함께 농담하고 얘기를 나누는 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깨닫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고. 그런 소박한 소망이 반전의 복수 서사를 낳은 힘인 것 같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