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등으로 이미지에 직격탄을 받자 대대적인 내부 혁신에 나서겠다는 태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확실한 내부 진단과 함께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등 도약을 위한 산고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삼성그룹 사장단이 17일 서울삼성병원이 메르스 2차 유행의 진원지가 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송구하고,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그룹 차원의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삼성병원 문제와 함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계획에 대한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세도 그룹 내부에서는 곤혹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삼성을 이끌던 이건희 회장이 1년 넘게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그동안 잘 작동해 오던 삼성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두 사안 모두 초기에 제대로 된 상황 판단과 그에 따른 그룹 차원의 합리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 최고 의료시설임을 자부하던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환자 발생 이후 환자 및 밀접 접촉자 등 메르스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발 감염자가 속출했고, 메르스 환자 접촉자 관리에 허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병원장이 직접 공식사과를 해야 했고, 지난 13일부터는 자진해 부분폐쇄 결정까지 내렸다.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확산 책임논란은 삼성생명공익재단으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달 15일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선임된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운영한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 취임 직후 삼성서울병원에서 큰 문제가 터져 나와 이 부회장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결정도 마찬가지다. 이 조치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경영권 승계의 핵심 사안이다. 그런데 엘리엇이 양사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아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엘리엇의 공격은 충분히 대비가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합병 계획 발표 전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관련 질의를 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이 이를 무시했고,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보고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합병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공격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셈이다. 삼성물산 주요 임원들이 세계를 돌며 주주들을 만나 합병 효과 등에 관해 설득하고 있지만, 주주들의 의견과 같은 관련 정보 수집에는 미흡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 그룹 관계자는 “그룹 내 주요 정보가 핵심부서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최고경영자들은 부족하고 부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이 쓰러진 지난해 5월 이후 삼성을 무난히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이 부회장은 예기치 않은 악재로 리더십 위기는 물론 삼성의 대외 이미지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처하게 됐다. 그룹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일련의 사태가 진정되면 삼성서울병원을 시작으로 그룹 내부에 대대적 혁신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메르스·엘리엇에 連打… 삼성, 위기대응 시스템 수술대 올려라
입력 2015-06-18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