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통보안 강남 고급 빌라, 택배상자 속 잠입한 도둑

입력 2015-06-18 02:47
택배 위장 절도범이 찍힌 CCTV 영상. 상자에 범인이 들어 있었다. 강남경찰서 제공

지난달 20일 오후 3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고급 빌라 앞에 용달차가 멈춰 섰다. 택배기사 차림의 안모(35)씨가 “주민 A씨(31) 집에 배달하러 왔다”며 상자를 끌고 경비원을 지나쳤다. 철벽 보안 체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한 안씨는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A씨 집 앞에 도착했다.

이 상자 속엔 안씨와 알고 지내던 임모(33)씨가 숨어 있었다. 키 178㎝의 임씨는 높이 150㎝, 가로·세로 100㎝짜리 장식장 상자 속에 몸을 구겨 넣은 채였다. 그는 지난 4월 불법 자가용 택시영업 ‘콜뛰기’를 하다 A씨의 심부름을 하며 알게 된 이 집 현관 비밀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상자를 7층 비상계단에 두고 내려온 안씨는 “집에 사람이 없어 다음에 오겠다”고 경비원에게 둘러댔다. 임씨는 비상계단에 숨은 채 A씨 집에 들어갈 기회를 엿봤다. 그의 기다림은 18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집 안에 계속 인기척이 있었다.

다음날 오전 10시5분쯤 A씨 가족이 모두 외출했다고 확신한 임씨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현금 30만원을 챙긴 뒤 물건을 뒤적이다 갑자기 방에서 나온 A씨의 친구 B씨(31)와 눈이 마주쳤다. “누구냐”는 물음에 임씨는 “심부름 왔다”며 허둥댔다. B씨는 A씨에게 전화해 “심부름시킨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CCTV 영상에 임씨가 빌라로 들어가는 모습이 없는 것을 수상히 여겨 추궁한 끝에 ‘상자 잠입’ 과정을 자백 받았다. 영상에는 가짜 택배기사 안씨와 ‘상자’가 이야기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7일 특수절도 혐의로 임씨와 안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