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성 교수의 교회행정 산책] (21) 초월적 지도자를 주시옵소서

입력 2015-06-19 00:16

리더십은 추종자가 많이 있을 때에 발휘되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지도자와 사람들 누구나 리더십에 대해서 말하지만 제대로 된 리더십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실 때마다 초월적인 지도자를 세우시고 그 지도자를 통해서 국가와 민족을 인도해주셨다. 그러기에 어느 국가나 사회가 평안하길 원하면 하나님이 세우시는 초월적 지도자가 나와야 되는 법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이후로 만인 제사장설을 내세워 저마다 관료라고 생각하며 모두가 지도자라고 생각하기에 초월적 지도자를 찾지도 않고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개신교의 병인 것 같다.

개신교는 조직상 정부조직이 아닌 사기업과 같은 조직이기에 교단헌법이 규약이나 규범이상을 넘지 못하며 행정책임과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개신교의 분열과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성경적인 지도자들은 연합을 외치나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파당을 만들고 자기세력을 확보하기위해서 획책을 도모하는 일을 종종 본다.

130년 전 가난하여 병들고 어려운 이 나라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목숨을 걸고 선교하면서부터 대한민국은 기독교 2000년 역사 이래 가장 경이적인 부흥과 성장으로 세계가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물질이 풍요해지면서 사랑이 빈궁해지고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천국보다 현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바꾸어 말해서 에베소교회처럼 순수한 첫사랑을 잃어버렸으며 부유하고 타협했던 라오디아 교회처럼 벌거벗은 교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교세를 성공의 잣대로 표준을 삼으며 권력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왜곡하며 재력을 축복의 바로미터로 호도하는 한 한국개신교의 회복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로 잡혀가고 세상 왕에게 지배받은 것은 하나님의 초월적 지도자의 다스림을 거부하며 자기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지도자로 정하고 자기들의 뜻을 성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회 일부 목회자들은 스스로 사사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초월적 지도자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순수한 청교도 50명이 세운 나라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리더십 국가가 된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영적이며 순교자적인 감동과 자원함을 불러일으킨 시대적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존경받는 대통령들은 어쩌면 성직자들 같았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어떤가.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정치판을 닮아가고 최고경영자와 같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양기성<서울신대 교회행정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