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가 걱정이다. 방위산업계에 근무하려는 사람들이 있을까. 어렵게 일궈왔는데, 참 아쉽다.” 최근 만난 방위산업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우려다. 무기도입 사업 비리로 수개월째 방산비리합동조사단의 조사를 받고 있는 방산업계는 침체될 대로 침체됐다. 한 관리는 “방산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 발생 시 해군 구조함 ‘통영함’이 투입되지 못한 것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무기도입 사업 비리는 국민들을 경악하게 할 만했다. 군 수뇌부가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부하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부실 장비 도입에 관여했다. 개탄할 일이다. 성능 미달인 장비임을 알면서도 허위 문서를 작성해 도입한 실무자도 있었다. 부실의 골은 깊고도 넓었다.
방산비리는 사소한 것이라도 용납돼선 안 된다. 다른 분야와 달리 방산비리는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어서다. 사소한 오류나 비리가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치명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잘못이 방산업계 전체의 비리인양 매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품 선정에 비리가 있거나 허위 문서를 작성했다면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적 실수였다면 정상참작이 돼야 한다. 누군가를 봐주기 위해 사업집행 과정을 왜곡했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복잡한 과정을 줄이거나 전력화 시기를 맞추기 위해 조정한 부분마저 비리로 분류돼서는 안 된다.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본부는 요즘 기피 분야가 되고 있다. 무기 도입과 생산 사업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언제 비리에 연루될지 모르고, 소신껏 추진한 사안이 절차 위반으로 감사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올해 결정돼야 하는 사업 진행도 더디다. 실무자들이 시시콜콜 절차를 따지고 오해 소지가 있는 분야는 손대려 하지 않아서다. 방위산업이 ‘미운 오리새끼’가 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시작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1971년 군용차량 연구·개발 사업 ‘황소작전’은 첫걸음부터 벽에 부닥쳤다. 참여하겠다는 회사가 없었다. 이익이 크지 않고 위험 부담도 있어서다. 당시 청와대 경제2비서실 수석비서관으로 방위산업을 이끈 오원철씨는 저서 ‘한국형 경제건설’에서 “바쁜데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라”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기아자동차가 “무척 힘들지만 국가를 위해 하는 일이니 서로 힘을 모아 해봅시다”라며 나서서 겨우 우리 손으로 군용차량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 방위산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기 시제품 긴급개발 사업인 ‘번개사업’을 그는 직접 챙겼다. 한 달 만에 미국산 무기를 국산화한 구식 병기를 보고 박 대통령은 “올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추켜세웠다. 잘 만들어서가 아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군이 쓸 무기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결실이 가상해서였다. ‘미운 오리새끼’인 방위산업이 ‘백조’가 될 뻔한 순간이 있었다. 이명박정부 때 신성장산업으로 선정돼 대대적인 지원을 받을 것처럼 보였다. 지원도 있기는 했다. 외교관들이 적극 나서서 수출도 늘었다. 박근혜정부에서도 방위산업은 중요 분야로 꼽혔다. 추켜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 방위산업은 유사시 군에 중요한 장비를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 방위산업은 국제 무기 관련 전문기관들이 세계 5위의 재래식 무기 수출국으로 꼽을 만큼 성장했다. 화려한 백조가 될 가능성이 있는 분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방위산업 생태계가 더 이상 무너져내리기 전에 방산을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청와대에 방산비서관 신설을 바라는 이유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내일을 열며-최현수] 방산비서관도 필요하다
입력 2015-06-18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