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서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어른들도 필요하다.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됐지만 어른들의 마음속에도 공부에 대한 필요와 열망이 내재해 있다.
한자는 알겠는데 한문은 모른다?
처음 읽는 한문/이재황/안나푸르나
上有天, 下有地. 天地之間, 有人焉, 有萬物焉(상유천. 하유지, 천지지간, 유인언, 유만물언). 조선시대 서당 교재인 ‘계몽편’의 첫 문장이다. 한문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에 못 읽을 글자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인지 해석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자는 좀 알더라도 한자로 구성된 문장, 즉 한문은 모르는 탓이다. 대다수 한국인의 공부는 한자에 머물러 있다.
‘처음 읽는 한문’은 ‘계몽편’과 ‘동몽선습’을 같이 읽어나가며 한자에서 한문으로 건너가기를 시도한다. 조선시대 아이들은 서당에 들어가면 우선 ‘천자문’을 배웠고 그 다음으로 ‘계몽편’과 ‘동몽선습’을 읽혔다. ‘천자문’은 글자 공부였고, ‘계몽편’과 ‘동몽선습’은 문장 공부였다.
‘계몽편’ 첫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알면 된다. 한문은 ‘주어+서술어’의 기본 구조가 주가 되고, 서술어 뒤에 부가어가 한두 개 추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上有天, 下有地’는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땅이 있다’로 풀이하게 된다.
또 띄어쓰기나 문장부호가 없는 한자는 군데군데 허사를 넣어줌으로써 같이 읽어야 할 글자의 덩어리나 문장 성격을 알려준다. ‘焉’(언)이라는 글자는 그런 허사들 가운데 하나로 마침표에 해당한다. 그래서 ‘天地之間, 有人焉, 有萬物焉’은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고 만물이 있다’로 풀어낼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한문 한 문장을 읽어냈다는 감격, 조선시대 학동들이 서당에 앉아서 문리를 틔워 나가던 그 과정에 자신이 함께 앉아있는 것 같은 설렘, 한문 공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 책은 독자를 자극하는데 성공한다. 저자와 같이 두 권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한문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생겨난다.
출판사는 이 책을 기획하고 저자를 찾을 때 한문 전문가를 배제했다고 한다. 너무 어려워지는 걸 피하고 싶어서다. 저자 이재황씨는 한문은 물론 영어에도 능통하다. 영어로 된 인문서를 다수 번역했다. 그래서 한문을 설명할 때, 한글과 영어를 끌어들여 그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한문을 해석해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문장구조나 문법에 대한 이해가 없고, 관용어나 허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부분만 알아도 웬만한 문장은 해석이 가능해진다. 책은 여기에 집중해서 한문 문장 이해를 위한 핵심사항 104가지를 정리해 냈다. ‘처소·시간·장소·상대·대상·원인·방식·비교의 허사 於(어)도 기억해 두자’ ‘則(즉)은 앞과 뒤를 연결시켜준다’ ‘한문 고전 읽기의 상식, 五行(오행)을 익혀두자’ 같은 식이다. 출판에는 소설가 김훈이 깊게 관여했다. 그는 좋은 한문 공부 교재가 있어야 한다는 데 적극 동의하고, 책 기획부터 원고 검토에까지 참여했으며 추천사도 썼다.
be동사에서 주저앉은 당신에게
미치코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마스다 미리/이봄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일본의 여성 만화가 마스다 미리가 영어 학습만화를 냈다. 그녀와 함께라면 아주 색다른 영어 공부가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준다.
책은 40세에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워킹맘 미치코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가정교사에게 영어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해외여행 중 영어로 대화할 때 늘 두세 문장을 넘지 못하는 게 아쉬워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작가 자신의 체험담이기도 하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간소하고 그 수준도 기초적이다. 어순, 명사와 동사, ‘a’와 ‘the’, 인칭, be동사 등이다. 이것은 미치코의 영어 공부가 ‘회화’가 아니라 ‘언어’ 그 자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하나라도 완전히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해나간다. 미치코는 초보적인 내용을 놓고 이해가 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그 과정에서 기존 학습서들은 말하지 않는 독창적이고 깊은 영어의 특성이 발견되기도 한다. “영어는 중요한 부분을 먼저 전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랄까” “우리말은 ‘어떤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는지를 선택할 수 있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와 같은 놀라운 구절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저자는 공부의 기쁨에 대해서도 말한다.
“배운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은 사소한 발견일지라도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르게 양초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밝고 따뜻하고 기쁜 것이었습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한문을 배울까? 영어를 익힐까? 만학의 즐거움… 어른들을 위한 공부법 2권
입력 2015-06-19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