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다급한 SNS 메시지가 날아왔다. “당분간 여의도성모병원에 가지 마세요. 6번 환자가 오늘 새벽 아산 거쳐 여의도성모 왔다가 메르스 확진 나서 지정격리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여의도성모병원 icu(집중치료실) 폐쇄되었다고 하니, 혹여나 병원 근처엔 안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등포구 여의도에 근무하는 기자가 걱정돼 보냈단다.
나흘 뒤에는 경기도 평택의 한 버스회사 임원이 확진환자가 됐다는 메시지가 선배로부터 건너왔다. 병원 명단도 첨부돼서. 그밖에도 여러 SNS 계정에는 메르스 관련 ‘정보’가 난무했다. 바세린을 콧속에 바르면 예방효과가 있다는 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진실도 꽤 많았다. 정부가 6월 7일 공개한 메르스 병원 명단에는 여의도성모병원이 실제로 포함돼 있었다.
정부가 메르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동안 이처럼 우리들은 서로의 생존을 걱정했다. 메르스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예방법, 확진환자가 있는 병원, 심지어 메르스 지도까지 만들어 퍼 날랐다. 그러다보니 과장되거나 없는 말이 덧붙여졌다. 이른바 유언비어, 괴담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부 입장이 신속하게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9일 유언비어에 강력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잔뜩 화가 나 있다. 지난해 세월호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이다. 화를 돋운 이는 동물원 낙타도, 최초의 확진환자도, 감염된 줄도 모르고 돌아다닌 의사도, 자가 격리를 어기고 골프장을 찾은 여성도 아니다. 무능하면서 섣부르게 정보를 통제하며 굼뜬 대처를 한 정부가 미운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메르스 환자가 처음 확인된 뒤 6일 만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첫 확진환자가 나온 이후 정부는 병원 이름을 18일이나 숨기고 있었다. 그새 초·중·고등학생 700여명이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서 단체로 건강검진을 받는 일도 벌어졌다. 병원 명단이 하루라도 빨리 공개됐더라면 그 병원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부모들의 성난 목소리에 정부 관리 누군가는 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메르스 사태는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와 별개로 ‘정부와 국민 간에 있어 정보소통 문제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솔직히 선진국에서는 별 이슈가 되지도 못할 사안이지만, 우리에게는 절박하게 됐다.
박근혜정부의 대표적 공약 중에 ‘정부 3.0 시대 달성’이라는 게 있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 출마 선언 후 첫 공약으로 내놓았을 정도로 무게가 실려 있다. 일방향의 ‘정부 1.0’을 넘어 쌍방향의 ‘정부 2.0’을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맞춤 행복을 지향하는 ‘정부 3.0’을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박 대통령은 “정부 운영의 핵심 가치는 ‘공개·공유·소통·협력’이 돼야 한다”며 정보를 대폭 공개해 신뢰 정부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실소를 참지 못하는 독자들이 부지기수일 게다. 정부는 공약을 지키기는커녕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첫 메르스 환자가 확인된 직후 그의 동선은 물론 그가 머문 병원과 만난 사람을 모두 공개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사회가 공포로 패닉에 휩싸였을까, 아니면 시민들이 정부에 협조하며 메르스 차단에 자발적으로 나섰을까.
지금은 정보가 물처럼 흐르는 시대다. 능력도, 수단도 별로 없어 보이는 정부가 나선다고 통제가 되겠는가. 더욱이 국민은 통제 대상이 아니다. 의논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정보 소통의 파트너다. 대책도 없이 일단 막고 보자고 덤벼든 박근혜정부가 메르스보다 더 무섭다.
한민수 문화체육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시각-한민수] 정부가 더 무섭다
입력 2015-06-18 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