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분계선(MDL)을 넘어 15일 중동부 전선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는 귀순 하루 전 우리 군 전방소초(GP)에 도착했다가 다음날 발견된 것으로 드러났다. ‘노크 귀순’에 이은 ‘숙박 귀순’인 셈이다. 이 때문에 군 감시태세에 허점이 있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북한 병사 귀순 경로=군 당국은 16일 북한군 병사가 14일 밤 북한 측 철책을 통과한 뒤 우리 군 GP 인근 언덕까지 접근해 밤을 지새운 뒤 날이 밝자 우리 군 철책으로 내려왔다고 밝혔다. 북한군 병사가 잠을 잔 곳은 MDL에서 남쪽으로 500m, GP에서는 400m 떨어진 지점이었다.
우리 군 경계병은 철책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육안으로 북한 병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철책과 GP 상황실까지는 4m에 불과했다. 경계병의 보고를 듣고 GP 부소초장이 뛰어나와 확인하자 북한군 병사는 “북군이다”며 귀순 의사를 표명했다. GP 부소초장은 오전 8시쯤 귀순 병사를 만나 GP 내부로 유도했다.
북한군 병사는 지난 7일 근무하던 부대를 이탈해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19세인 이 병사는 함경남도 함흥지역 한 여단에서 보위장교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중 잦은 구타 등 군내 폭력을 견디다 못해 귀순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 163㎝에 몸무게 54㎏인 왜소한 체격의 이 병사는 1주일간 차량을 타거나 걸어서 남쪽으로 200여㎞를 이동했다고 한다. 이 병사는 14일 강원도 김화에 있는 북한군 초소에 도착한 뒤 “약초를 캐러 왔다”고 둘러댔다. 밤이 오길 기다린 뒤 남쪽 GP의 불빛을 따라 내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북한 병사가 1주일 정도 북한지역을 활보할 동안 북한군이 이를 파악하거나 제지하기 못하고 또 DMZ 내 북한 측 철책을 어렵지 않게 통과한 것으로 봐 북한군 경계태세가 상당히 느슨해진 것으로 추정했다.
◇GP 경계근무 문제 없었나=군은 북한 병사가 GP 인근에서 하룻밤을 지냈음에도 스스로 걸어내려와 철책을 흔들 때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해 기상조건 악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날씨가 나빠 발견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군은 북한 병사가 DMZ 내 남쪽 영역에 진입한 14일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으며 짙은 안개로 10m 앞도 잘 안 보이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잡목이 우거져 시야가 제한돼 야간에 의심물질이나 인물을 감시하는 열상감시장비(TOD)로도 식별하기 힘들었다고 해명했다.
합참 관계자는 “악기상으로 관측이 제한되는 조건에서도 GP 경계병들이 청음작전에 성공한 사례”라며 “GP 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상이 안 좋을 경우 경계근무에 더 신경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개 등으로 적이 매복하기 좋은 여건이어서 침투 가능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DMZ) 내 GP 임무는 철책선 경계를 담당하는 일반전초(GOP)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군 동향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달해야 한다. 귀순자가 발생할 경우 미리 발견해 안전하게 유도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도 북한 병사가 GP에 올 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경계임무 수행에 구멍이 났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가 우리 군 GOP 창문을 두드리며 귀순한 ‘노크 귀순’ 사건 이후 전방지역에 대한 경계근무가 강화됐지만 또 한번 귀순 병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허점을 노출했다는 지적도 높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GP 코앞에서 하룻밤, 이번엔 ‘숙박 귀순’… 北병사 귀순 뒷얘기
입력 2015-06-17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