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재난] 국민이 정부 불신하는 이유… “공기전염·지역확산 없다” 헛말이 된 ‘당국의 말’

입력 2015-06-17 02:25
서울 노원구 상계백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16일 간호사가 마스크를 쓴 채 환자들의 발열 검사를 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잘 통제되고 있고 안전하다”는 보건 당국의 말은 공허하다. “이번 주말이 고비”라는 전망은 ‘양치기 소년’의 늑대타령이 됐다. 보건 당국과 의학계 전문가 등은 전문지식을 앞세워 불안감을 씻으려 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당최 알아듣기 힘든 그들만의 언어는 불신을 부추긴다. 시민의 눈높이를 배려하지 않은 ‘안심 강요’가 메르스 공포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모(45)씨는 16일 아침 집 근처 택시 승강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김씨는 “택시라고 안전할까 싶지만 그나마 이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냐”며 “비용 부담이 크지만 당분간 택시를 탈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 같은 대중교통 이용객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메르스 확진 환자인 삼성서울병원 이송요원이 증상 발현 후에도 열흘 가까이 서울시내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보건 당국이 내놓은 메르스 예방수칙을 아무리 잘 지킨다한들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서 침범할지 모른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보건 당국이 얘기하는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을 두고도 불신이 쌓이고 있다. 지난달 5, 6일에 76번 환자(75·여·사망)를 이송했던 사설 구급차 기사 133번 환자(70)와 이 구급차의 동승요원 145번 환자(37)는 마스크를 썼지만 감염됐다.

이를 놓고 보건 당국은 넓은 범위의 병원 내 감염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시민들은 구급차 운전석이 환자와는 격리된 공간이라는 데 주목한다. 운송 수단에서 일어난 감염이기 때문에 택시·버스·지하철이라고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지역 확산은 없다’는 당국의 거듭되는 확언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애초 평택에서 시작됐던 메르스가 서울을 거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는데도 지역 확산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병원 바깥에서 이뤄지는 감염’을 지역사회 전파 혹은 지역 확산으로 정의하지만 일반인에겐 혼란스러울 뿐이다. 지난주까지 멀쩡하던 동네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면 지역 확산과 다를 게 뭐냐고 지적한다.

‘공기 감염 가능성이 없다’는 말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1차 유행’의 진원지였던 평택성모병원에서 바이러스는 옆에 떨어진 병실로도 퍼졌다. 심지어 층이 다른 병실의 환자와 의료진에게도 전파됐다. 전문가들은 에어컨을 타고 에어로졸 형태로 확산됐다고 진단했다. 시민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면 그게 공기 감염이지 뭐냐”고 꼬집는다.

기저질환이 없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메르스에 걸려도 치명적이지 않다는 보건 당국의 설명도 허언이 됐다.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38)와 경찰관인 119번 환자(35)는 평소 앓던 병이 없는 건강한 30대인데도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20일이면 첫 번째 환자(68)가 메르스 확진을 받은 지 한 달이 되지만 불신과 불안의 골은 깊어지기만 한다. 바이러스의 감염력을 과소평가하고 환자 이동경로 및 접촉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와 대형병원이 허둥대는 사이 감염은 차수를 더해가고 있다.

회사원 장모(37·여)씨는 “시민들은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언어를 기대한다. 보건 당국이 전문지식과 그들만의 언어에 기대는 사이에 괴리는 점점 더 커지고, 덩달아 공포심도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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