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메르스 정보는 겉돌고 시민의식은 미흡하기만

입력 2015-06-17 00:42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바이러스 관련 전문 학술지 ‘바이루런스(Virulence)’ 등의 자료를 보면 미국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의 2013∼2014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 시스템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메르스를 조기에 진압할 수 있었던 공통점은 하나다. 정부와 병원, 시민의 긴밀한 유대와 협력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발 빠른 정보 공개와 신속한 환자 격리로 믿음을 줬고, 의료진은 치료에 헌신했다. 시민들은 각자의 불편을 감수하고 당국과 병원의 지시에 기꺼이 따랐다. 이런 삼위일체는 메르스 초기 봉쇄로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장기화까지 우려된다. 이렇게 된 까닭은 1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는 지금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전염력이 약하다” “공기전염 없다” “4차 감염 없다” “젊으면 괜찮다” “이번 주가 고비다” 등 당국의 전망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최대 14일이라고 예상했던 잠복기도 16∼18일 만에 발병된 환자가 나타났고, 4차 감염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사망자 가운데 4명은 기저질환이 없는 환자이고 40대 사망자도 처음 나왔다. 이는 정부가 메르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방증일 것이다.

격리자가 5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일부 시민들의 실종된 의식도 이번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는 요인이다. 대구지역 첫 감염자이자 공무원인 154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정상 업무를 이어가다 15일 확진 판정을 뒤늦게 받았다. 직원 회식에 버젓이 참석하고 사우나에도 출입했다니 어처구니없다. 141번 환자는 막말을 하며 격리를 거부한 뒤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격리와 관련해 경찰이 출동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서울의 한 의료기관에선 자가 격리에서 해제된 사람의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확산 추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고는 하나 4차 감염 속출, 지역사회 감염 우려 등 변수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고비를 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와 의료진, 국민의 하나 된 힘밖에는 없다.

먼저 정부는 그동안의 헛발질에서 벗어나 정확한 판단과 적절한 대응, 치밀한 추적시스템 등으로 하루빨리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시민들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불필요한 걱정과 위험을 초래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그것이 가깝게는 가족, 동료를 위하는 길이고 결국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대부분의 의료진을 욕되게 하는 일부 의료기관의 ‘환자 핑퐁’도 없어져야 한다. 민·관과 의료계 모두 저력을 보여줘야 한다. 세계가 우리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