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철강제품과 관련된 모든 것이 문래동에 모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래동에선 군용전차까지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인근 양평동과 대림동 일대까지 철공소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지만,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활기가 꺾였고 저가 중국산 철강제품이 국내에 대량 유입되면서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철강산업의 부침 속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문래동 철강단지가 산뜻한 표정을 짓게 된 것은 지난 2000년대 들어서다.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된 예술가들이 삼삼오오 찾아 들면서 철공소가 있던 자리에 특색 있는 문화공간들이 하나 둘씩 들어섰다.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된 문래예술창작촌이 조성되면서 기존의 산업공간으로 새로운 인상이 스며들었다. 지하철 문래역으로 이어지는 예술창작촌 거리에선 색다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연인들과 가족들이 많이 눈에 띈다.
지난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국 촬영지 중 하나였던 철강단지는 영화의 흥행과 함께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를 보고 현장을 직접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문래동 토박이인 연응범(67)씨는 “굉음 속에 쇳가루 날리고 용접 불꽃 튀던 곳으로 예술인들이 찾아오고, 미국에서 영화도 찍으러 오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이라며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다채로운 얼굴을 한 문래동 철강단지가 지닌 진정한 표정은 ‘어우름과 머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도시의 확장과 산업의 격변을 거치며 공간에서 분리와 천이(遷移)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정착이 유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곳에선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철물 제작소와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동시에 용접 불꽃이 튀는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문래동 철강단지는 중국 최초의 예술특화지구인 베이징의 ‘798예술구’와 발전소에서 현대미술관으로 변신한 영국 런던의 명소 ‘테이트 모던’과도 많이 닮았다. 하지만 공간의 형성과 변화과정에서 다른 예술공간들과는 차별화된 개성을 뽐낸다. 독특한 도시공간이 추구하는 창의적인 실험은 이곳이 생업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국형 신개념 산업·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래동 철강단지는 지금 유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글=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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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속 세상] “허허… 할리우드서 영화까지 찍네요”… ‘철강자재 일번지’ 서울 문래동 풍경
입력 2015-06-17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