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와의 첫 만남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우산 모양의 옷을 입고 까치발로 춤을 추는 동안엔 내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발레를 알게 되면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갖게 되었고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감당하기 위해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홀로 춤을 춘다는 건 청각장애인에겐 혼자 음악을 느끼고 이해해야 하는 남모를 노력이 숨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발레에서 음악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청각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이해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이 내겐 필요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선배들보다 일찍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어린 나이에 홀로 무대를 장악하며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이전까지의 무대와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엄중한 무대였다. 음악을 이해하고 음악과 어우러진 동작을 파악하기 위해 곡을 수없이 반복해 들었다. 다행히 한쪽의 청각은 미약하게나마 살아 있어 집중해 들으면 박자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발레리나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레와 함께한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힘겨웠던 순간들이 많았지만 불가능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저 남들보다 시간과 노력이 좀 더 필요했을 뿐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더불어 행복한 발레단’에 관한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이 발레단은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어우러져 이미 두 차례나 감동적인 공연을 선보였으며 올해 3기 단원을 모집하고 있다. 발레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함께 꿈을 그려가는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분명 따듯한 희망을 선사할 것이며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과 더불어 이해와 소통, 그리고 교감을 배우게 될 것이다.
‘더불어 행복한 발레단’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이란 타이틀이 불필요한 세상, 타인과 나를 나누고 선 긋지 않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위한 ‘더불어 행복한 발레단’의 아름다운 무대를 기대한다.
고아라 청각장애 발레리나
[기고-고아라] ‘더불어 행복한 발레단’의 아름다운 무대를 바란다
입력 2015-06-17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