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아버지를 위한 의자

입력 2015-06-17 00:20

나는 잘하는 일이 없다. 관심이 있어 시작할 때는 누구보다 강한 열정으로 덤빈다. 그런데 그 열정이란 놈이 석 달을 넘기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라고 변명했지만 아버지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른다는 거야”라고 나를 책망했다. 아버지는 스물이 되기 전에 시작한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 일이 좋아서라기보다 먹고사는 일을 우선으로 여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떤 불만도 품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공장 문을 열고 일손이 부족할 때면 밤늦게까지 기계를 돌렸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재미없는 일을 어떻게 평생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내게 아버지는 누구처럼 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오래도록 깊이 있게 해서 너는 네가 돼야지, 라고 알듯 모를 듯한 말을 하셨다.

얼마 전 이사한 동네는 집만큼이나 밭이 많은 곳이다. 밭과 밭 사이 외진 곳을 산책하다 우연히 공방 하나를 발견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책망하는 오래된 눈동자. 이번에도 그러시겠지. 하지만 나는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장님은 도구 사용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것이 능숙해질 때까지 어떤 것도 만들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나는 며칠째 드릴로 못을 넣었다 뺐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손에 굳은살이 박였다.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일해 온 크고 딱딱한 손. 오늘은 이 말을 꼭 전해야겠다. “우리는 선택의 폭이 많은 대신 인내심을 갖고 해야 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에는 끝까지 해서 아빠한테 의자 하나 만들어드릴게요.”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지금이라도 인내심을 갖고 무언가를 꾸준히 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아빠처럼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겠죠?

한 가지 일을 저토록 오래 성실하게 해내신 아버지를 볼 때면 나 자신이 부끄럽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 모습을 닮고 싶다.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