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재난] 메르스 공포도 전염… ‘심리 방역’ 시급하다

입력 2015-06-16 02:41

눈에 보이지 않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바이러스가 들불처럼 번져나가면서 불안심리가 차오르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은 방역 마스크를 쓰고, 남이 만졌을 만한 곳은 가급적 손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집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감염시킬지 모른다는 생각을 서로가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불신의 상황은 공포를 더욱 증폭시킨다. 직장인 선모(38)씨는 ‘메르스의 포위망’이 자신을 향해 좁혀오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형이 다니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지난 14일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형이 사는 경기도 용인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왔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조카는 두문불출이다.

선씨가 지난주까지만 해도 남의 일 정도로 생각했던 메르스는 조용하지만 섬뜩하게 가족의 생활권 안으로 진입했다. 그는 갓난아기인 딸을 맡아 키워주는 장모가 외출을 두려워할 때마다 “뭘 그렇게까지 걱정하느냐”고 말했었다. 지금 처가가 있는 경북 포항은 고등학교 교사가 메르스 감염자로 확인되면서 술렁이고 있다.

본가인 서울 양천구 신정동도 비슷하다. 확진 환자가 인근 메디힐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네가 활기를 잃었다. 60대 중반인 선씨의 부모는 가급적 외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불신과 두려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지나친 공포’에 대한 ‘심리적 방역’이 필요하다고 지목한다.

의사협회는 ‘근거 없는 공포’의 원인이 정부에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미숙한 대응 때문에 공포심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신현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15일 “아직 지역사회 감염까지 갔다고는 확실하게 볼 수 없는데 국민 사이에서 어디를 나가기만 해도 감염될 것처럼 괴담이 퍼진다. 이런 부분은 의학적으로 근거 없다는 게 협회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 대변인은 “자가격리자, 특히 노출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해 스스로가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런 지침이 부족하고 자가격리 여부에 대해서도 정부 기관마다 얘기가 달라 혼선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부분에 대해 정부가 확실하게 답변을 하고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아쉽다”고 했다.

메르스 자체보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공포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장 좋은 병원, 다쳤을 때 도와줄 응급실 의사들, 앰뷸런스 요원들,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메르스가 옮고 있다. 우리가 믿었던 것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점에서 메르스 자체보다 (불신으로 인한) 파장이 더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진단했다. ‘공포 전문가’로 불리는 심리학자 폴 슬로빅 미국 오리건대 교수는 “메르스 공포를 없애려면 대중의 두려움을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인들은 두려워하기에 앞서 위생수칙부터 준수하라고 조언한다. 정부가 초기대응에 실패한 상황에서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손 씻기나 마스크 쓰기는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감염 예방법이다. 또 직접 진료나 치료를 받을 목적이 아니라면 병원 방문을 자제해야 한다. 병문안이나 문상도 마찬가지다. 메르스 감염자 상당수가 병원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창욱 홍석호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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