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영화 ‘감기’를 봤다. 2013년 개봉된 영화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원인불명의 변형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퍼진 뒤 벌어지는 상황을 상상적으로 묘사했다. 분당소방서 구조대원인 지구(장혁)와 감염내과 의사 인해(수애)가 급속도로 퍼지는 전염병 재난 상황에서 인해의 딸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최근 각종 인터넷TV나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 중 하나다. 영화 내용은 좀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정부나 정치권의 무사안일과 무능, 대중의 두려움은 일부 현 메르스 상황과 오버랩돼 가슴에 와 닿았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재앙 속에서도 존엄성을 잃지 않고 극복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지구의 철저한 직업정신과 시민정신이 결국 대재앙을 극복하는 단초가 돼 감동적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그들은 총 대신 영웅적인 가슴으로 에볼라와의 전쟁을 치러냈다”며 ‘올해의 인물’로 ‘에볼라 전사들’을 선정했다. 지난해 3월부터 에볼라가 창궐하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목숨 걸고 치료·구호활동을 벌인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과 간병인, 구호단체 등을 지칭한 것이다. 타임은 “의료진의 지칠 줄 모르는 용기와 자비로 전 세계는 에볼라 방어 시간을 벌었다. 이들 덕에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청할 수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 우리에게도 슬픔과 분노의 바다에서 자신을 희생한 전사와 영웅들이 있었다. 대참사 속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보다 남, 공동체를 먼저 생각한 이들이 있었기에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승객 탈출을 도운 승무원과 사무원들,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먼저 구하고 희생한 교사들, 생업을 마다하고 구조에 앞장선 어민들, 탈진 직전까지 생존자 수색과 시신 수습에 나선 해경·해군 구조대원들과 민간 잠수부들, 전국 방방곡곡에서 팽목항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자원봉사자들 등이 그들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환자와 직접 접촉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뛰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적지 않다.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땀을 비 오듯 쏟아내지만 이들은 묵묵히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태 수습에 나선 경찰 등 일선 공무원은 물론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감옥 같은 격리실에서 자신과 싸우는 환자와 가족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살아 나갈 방도를 꾀함)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태를 악화시킨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한 대응이 사회적 불신을 유발시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일부 무개념 발언이 오히려 분노를 유발시킨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사회구성원 전체가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면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공포감을 유발하는 유언비어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혼란을 부추길 뿐이다.
아프리카 반투족 말 중에 ‘우분트(UBUNTU)’란 단어가 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한 인류학자가 반투족 아이들에게 나무에 걸린 과자 따먹기 경쟁을 시켰지만, 아이들은 우분트를 외치며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 음식을 나눠 먹었다. 이 학자가 “1명이 먼저 가면 다 차지할 수 있는데 왜 함께 뛰어 갔지?”라고 묻자, 아이들은 “우분트!”라고 외치며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째서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이 말을 강조하면서 지구촌에 널리 알려졌다. 우리 다 함께 ‘우분트!’를 외쳐보자. 우분트 바이러스는 반드시 메르스를 치유할 수 있다.
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
[돋을새김-오종석] ‘우분트!’로 메르스 퇴치
입력 2015-06-16 00:30